허혁(許赫)
신학자이자 이화여자 대학교의 교수였다.
1919년 황해도 해주 출신인 허혁 박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를 거쳐 85년 퇴직한 이화여대 교수 시절 15년간 2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그의 주도적인 공헌은 루돌프 불트만, 게르하르트 폰 라트, 그리고 귄터 보른캄을 비롯한 신약신학과 구약신학의 권위있는 전문서적들을 번역하여 독일의 신학을 소개한 것이다.
그는 성서 해석학을 학문적으로 정립시킨 신학자로서 한국의 성서 해석학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고 평가한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84년 8월 20일-1976년 7월 30일)
1. 독일의 루터회 신학자이다. 마르부르크 대학의 신약학 교수로 30년 동안 재직했으며,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서의 비신화화를 시도한 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2. 불트만은 비펠슈테데에서 태어났고, 루터회 목사의 아들이었다. 올덴부르크에 있는 알테스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Abitur)를 획득한 뒤, 그는 튀빙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두 학기가 지난 후, 불트만은 몇 학기 동안 베를린 대학으로 갔고, 결국 마르부르크에서 학업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학위를 1910년 마르부르크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에 대한 논문으로 취득하였다. 2년의 훈련을 거친 후에, 그는 마르부르크에서 신약 성서를 강의하게 되었다. 베를린과 기센에서 잠시 강사로 재직한 후, 그는 1921년 마르부르크로 돌아와서 정교수가 되었다.
3. 그는 1951년 은퇴할 때까지 마르부르크에 머물렀다. 한스 콘첼만, 에른스트 케제만, 귄터 보른캄, 한나 아렌트 그리고 헬무트 쾨스터가 그 제자 중에 있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신학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쳐 제자들이 생겨났다.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신-해석학파가 형성되었다. 불트만은 고백교회의 구성원이었으며, 국가 사회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그는 유대인 학대와 과도한 민족주의 그리고 아리안 인종이 아닌 기독교 성직자의 퇴출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4. 그의 사상은 신약 성서의 케리그마, 즉 예수의 신화적 행적들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철저히 변증법적 시각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19년에서 1968년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변증법적 신학은 하느님과 세상을 철저하게 대별해 놓고 오직 한 점을 통해서만 만나도록 했다. 그 점은 예수가 왔다는 '사실' 이고, 그가 떠났다는 '사실' 이며, 십자가와 부활이다.
5. 변증법적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했느냐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느님이 무엇을 말하고 행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메세지, 곧 신약 성경의 '케리그마' 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역사적인 예수가 아니라 '케리그마' 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6. 그리하여 종교사적 연구는 예수가 신학적으로 유대교에 속하며. 그리스도교는 예수 부활 사건 이후에 시작되었음을 밝혀냈다. 불트만은 이것을 토대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921년 출간된 기념비적 서술 <공관복음 전승사>의 정교한 분석의 결과 그가 도달한 귀결점은, 복음서의 구술전승 단위들인 단화들조차 헬레니즘적 교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7. 또한 예수의 선포는 신약 성서 신학의 전제들에 속하는 것이지, 그 신학자체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트만은 예수에게서 중요한 것은 오직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 뿐이고, 그 이상은 사학적 확증 없이 부실한 가설에는 신앙이 관련되지 않으며, 신앙과 관련되는 것은 오직 폐쇄된 인간 존재를 본연으로 해방시켜 주는 복음 선포로 일어나는 '말씀의 사건'(Wortereignis)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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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혁 교수 /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이라는 책에서 김용옥 선생이 불트만의 요한 복음 해석에 대해서 소개하는 가운데 주석을 달았는데 그 주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불트만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서는 불트만著, 허혁譯, '서양고대종교사상사' (서울:이화여대출판부, 1977)의 끝부분에 허혁 교수가 쓴 '著者에 對하여'라는 一文을 탐독해 주기 바란다. 매우 명쾌한 글이다.
그리고 불트만 신학과 함께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안될 학자가 지금 이화대학교의 허혁 교수이다. 허혁 교수는 평생을 불트만 저서 및 타성서비평역작의 우리말 번역에 바쳤는데 그분의 사업은 한국 근대 번역 문학의 금자탑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 기독교 신학사상 신앙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경의 꾸밈없는 진실을 왜곡없이 밝히려고 노력한 그의 학적 양심은 다양한 신학 체계의 정립을 위한 길을 연 공로와 함께 앞으로 더욱 크게 빛날 것이다. 그의 다양한 역서들은 우리 동양학도들도 자기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로서 읽고 자신의 사고를 개발하는데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서울: 통나무, 1995), 120.
1. 저녁 약속이 있어서 집사람까지 해서 셋이 식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도올의 요한복음 강연" 이야기가 나왔다. 그 강연에서 도올이 뭐라뭐라 말한 것에 대해 보수 기독교 단체 쪽에서 이의를 제기했고, 또 거기에 대해 오늘자 신문에 한신대 김경재 교수가 일종의 중재인지 평가인지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집사람은 김용옥이 비록 신학자는 아니지만, 양식비평이라는 성서 해석학의 한 분야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웠을 사람이니, 한국 보수 교단의 어설픈 논리로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요지로 이야기했다.
2. 아닌 게 아니라, <논어>나 <노자>나 요한복음 강의로 인해 전국민적인 명사가 되기 이전의 도올, 그러니까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와 <절차탁마 대기만성>의 저자 도올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뒤의 책은 얼핏 보기에는 "동양학"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에 대한 도올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해 놓은 것이며, 그 책에서 도올이 내세우는 자신의 "한문해석학"이란 것이야말로 실제로는 불트만의 "성서해석학"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책의 제2부는 "독서법과 판본학의 입장에서 새롭게 본 기독교"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내게는 영지주의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놓았던 글로 더욱 인상적이었고, 이 글의 말미에 "예수는 무당이라"고 주장해서 무식한 보수 기독교 단체 측에서 일종의 "테러"(?) 시도까지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어쩌면 기독교에 관한 도올의 입장이랄까, 견해랄까 하는 것은 이 책을 참조하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이른바 보수 기독교 쪽에서는 아직까지도 "마귀 사탄"과 동일시되는 인물인데, 사실 기독교 신학사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인물이며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를 꼽는다면 아마 수위 다툼을 하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다. 그의 성서 해석학은 그 "과격함" 때문에 보수 신학자들이나 십일조 강요하는 무식한 목사들, 그리고 무지몽매한 일반 신도들(흔히 말해서 웬만한 젊은 목사나 전도사들을 "찜쪄먹는" 할머니 권사님들) 모두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미움을 받지만, 사실 신학도 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토록 "과격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한 그의 학문적 태도야말로 성서를 대하는 가장 "정직한" 태도일 수도 있다. 단적으로 말해 불트만은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가 과연 신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실성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적 성실성을 어떻게 조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무식한 기독교인들이 인정하는 방식으로는 성서의 권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성서란 축자영감도 절대권위도 아닌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소스로부터 "편집"된 텍스트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성서의 "일점일획"까지도 고스란히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는 무식한 기독교를 숭앙하는 사람들로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
4. 학문적으로야 나무랄 데 없는 주장이고, 실제로도 우리나라에서 신학 하는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한 번씩은 들춰봐야 할 책의 저자이지만(하긴 그의 책은 좀 많이 번역되었던가!) 신학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신앙" 적인 측면에서는 독약과도 같은 인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천하의 "불트만"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졸지에 "마귀사탄"으로 여겨지는 셈인데, 여기서 가장 크게 손해를 본 사람은 아마도 그의 동포인 또 다른 신학자 "몰트만"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불트만과 몰트만의 생각이나 주장은 크게 달랐지만, 꽤 오래 전부터 단지 이름이 비슷한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불트만인지 몰트만인지"라는 식으로 나란히 매도당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5. 그리고 불트만과 도올,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 일종의 "다리" 노릇을 한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혁이다. 허혁이란 사람은 아마 기독교인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신학에 대해 관심이 있고, 그중에서도 교회 권사님들이 무척 싫어하는 "자유주의 신학" 쪽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불트만인지 몰트만인지"로 대표되는 양식비평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야 그의 이름을 알듯 말듯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나온 불트만의 책은 거의 모두가 허혁의 번역이고, 우리에게는 "밀림의 성자"로만 알려졌지만 사실은 천재 신학자이기도 했던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대작 <예수의 생애 연구사> 역시 허혁의 번역이다. 생전에 이런저런 논문을 발표했는지 모르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없는 듯하고, 말년에 제자들이 일종의 기념문집이랄까 하는 것을 한 권 펴냈는데, 두껍긴 하지만 번역 말고 평생 쓴 것이 그 정도라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다.
6. 오히려 허혁이란 이름은 불트만, 슈바이처, 로핑크, 예레미아스, 본회퍼 등의 이름과 나란히 기억되고, 문장이 아주 유려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번역은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 내에서 가장 독보적인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불트만의 책을 통해 허혁과 만나게 되었는데, 정작 허혁이란 인물 자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거꾸로 도올 때문이었다. 도올의 큰형인 김용준의 글 모음인 <사람의 과학>이란 책을 보면 서문에 "나의 큰형, 김용준"이라는 도올의 발문이 붙어 있는데, 이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좀 길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화이기 때문에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
① 내가 다녔던 보성중, 고등학교에는 서원출이라는 걸출한 교장의 리더십 때문에 당대 보기드문 석학들이 교사로 은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쯤인가? 우리 보성학교로 키가 껑충 크고 허우대가 멀쑥한 독일어 선생님 한 분이 새로 오셨다. 그는 상초가 심히 발달하여 몸무게의 중심이 몽땅 어깨로 이동하여 있는 느낌이었다. 키가 큰 반면 어깨는 앞으로 굽어 있었고, 두상은 백운대의 바위만큼이나 큰데 머리는 헝크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고난의 성상이 서린 좀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다. 귀밑에는 석학의 회색빈발이 고결한 품격을 나타내주었으나, 두 눈은 썩은 동태눈처럼 맥아리없이 저 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의 느낌은 한없이 착하게 보였고,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심오한 프로페조르의 느낌을 주었다.
② 그의 이름은 허혁이었다. 그가 독일의 뮌스터 대학에서 박사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박사까지 한 사람이 고등학교에 와서 독일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좀 이해가 가기 힘들었다. 허나 독일에서 온 독일어 선생이라는 신선한 충격은 당시 보성의 학우들에게는 커다란 화제였다. 허나 허혁은 매우 졸린 사람이었다.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퍽 씨알맹이 있는 얘기가 많은데, 그것을 매우 졸리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독일 얘기를 하거나 독일어 교과서에 나오는 일화에 얽힌 얘기를 할 때도 뭔가 고등학교 선생에게서는 들어보기 힘든 심오하고 매서운 언사가 툭툭 던져지곤 하는데, 매우 졸린 분위기를 깔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민주적인 사람이래서 통솔력이 없었다. 주변의 기를 압도하는 허세나 과장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독일어 시간은 아이들이 졸고 떠드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럴수록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가 순한 것 같아도, 그의 말 속에는 항상 단호함과 지적 날카로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그에게 매우 난처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고 1 2학기 때의 일이었다고 기억된다.
③ "선생님은 겨우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실려고 그 어려운 독일유학을 하셨습니까? 무언가 선생님이 공부하신 것에 비해 지금 하시고 계신 일이 너무 시시한 것이 아닙니까?" 나는 지난 일이지만 이 나의 질문을 명료하게 한 자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허혁 선생은 이러한 나의 질문에 뚜렷한 대답을 회피했다. 그는 맨 앞줄에 앉어있는 (2번인가? 3번인가?) 나를 꿰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난처한 몸짓으로 빙그레 미소를 짓고 말아버렸다. 넌 아직 나를 알 수 없는데, 내가 무엇을 변명하리요? 하는 눈치였다. 나는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
④ 허혁 선생은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 교단에서 배척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 교계나 학계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공이 또 큰 문제였다. 허혁 선생은 불트만을 전공했는데, 불트만이야말로 당대 교단에서는 최대의 이단자였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신화적 허구 속에 안주하기를 희망했던 당대 교계의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의 존재의 근원을 허물어버리는 매우 무서운 이단의 칼날이었다. 그러저러한 연유로 허혁 선생은 교단이나 신학계로 복귀를 못하고 독일어 선생이라는 간판을 잠시 빌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완벽히 불트만의 해석에만 몰두하는 완벽한 학자였다. 학문의 전일성으로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허혁만한 인물을 만난 적이 없다. (40-42쪽)
⑤ 이후 허혁은 감신대 교수가 되어 학교를 떠났지만, 도올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신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허혁에게 보냈다. 이에 대해 허혁은 성실한 답장을 써 보내주었고, 도올은 허혁으로부터 받은 여러 통의 답장을 근거로 삼아 부모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 석학의 편지들을 우리 부모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나의 신학대학 행이 결코 우발적 발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 돌팔이 목사가 되어 신도 돈 긁어 떼쳐먹고 사는 주님 종 노릇 할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차분히 설득해 들어갔다. 그리고 허혁 선생의 연루로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단계에서 나는 큰형의 중재를 요청했다. 그리고 나의 문제는 허혁 선생이 대변할 수 있으니깐 큰형이 허혁 선생을 만나줄 것을 요청했다. 큰형은 나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큰형 자신이 불트만 신학에 감명을 받고 있었던 터이라 허혁 박사를 만나고 싶어 했다. (큰형은 미국 유학 시절에 Jesus Christ and Mythology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라는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미국에 가자마자 이 책을 사서 읽었다.)
⑥ 과학자 김용준과 신학자 허혁의 만남은 이렇게 해서 나를 매체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 나는 이듬해 한국신학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또 부모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렇게 어렵게 따낸 한국신학대학 입학이었지만 결국 나는 일 년 후에 신학대학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순전히 자발적 의사에 의하여. 그리고 나는 고려대학교 철학과로 다시 입학한다. 내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큰형은 고려대학교에서 명강의를 하고 있었던 교수였다. 그리고 그는 고려대학교 기독교 학생회의 지도교수였다. 고려대학교 지금 학생회관과 홍보관 사이에 즐비하게 펼쳐져 있었던 당시의 판자촌 학생 써클실에는 지도교수인 김용"준"과 기독교 학생회 회원인 고려대학생 김용옥이 같이 앉어있었다. 바이블 클라스였다. 그 바이블클라스에는 허혁 박사가 불트만의 <신약성서신학>을 독일어로 강해하고 있었다. 이것이 큰형과 나 도올 김용옥이 살아간 인생의 한 단면이었다. (43-44쪽)
⑦ 이후 허혁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신학과"가 아니다)로 자리를 옮겨 은퇴할 때까지 재직했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쩌면 신학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에, 그것도 여자대학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그가 감신대나 한신대 같은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신학교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면, 그래도 지금쯤은 작지만 버젓한 "허트만" (허혁의 별명이었다고) 학파가 하나 생겨났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대학의 경우에는 신학을 전공해도 교계로 진출하기가 어렵고 (가령 지금 연세대나 이화여대 같은 일반대학의 신학/기독교학 전공자들도 교계로 진출하려면 특정 교단 산하의 대학원을 나오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유주의" 교단을 찾는 수밖에 없으니까) 더군다나 여자대학의 경우에는 제자를 배출하기도 쉽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물론 여성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허혁이 활동하던 시대에만 해도 우리나라처럼 남성위주로 된 사회에서, 그것도 신학이라는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은 여성신학이라는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쉽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니,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나마 이화여대 정도 역량이 되었으니 허혁 같은 "내놓은 이단자"조차도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⑧ 허혁 선생은 1990년대 중반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물론 나도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은 없다. 이제 와서는 기억하는 사람도 아주 없어지나 싶었는데, 어쩌면 도올이 이번에 요한복음을 이야기하면서 혹시나 허혁을 뒤늦게라도 유명인사로 만들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옛 기억이 떠올라 끄적여 보았다. 혹시나 도올의 강연 때문에 새삼스레 불트만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와중에 허혁이라는 이름(두 글자니까 쉽기도 하다)을 기억해 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겠다.
⑨ 사실 불트만은 그렇게 읽기 쉬운 저자는 아니다. 일단은 기독교를 충분히 알아야 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기독교를 충분히 "내던질" 또는 객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때가 무르익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런저런 고민 많던 시절에 불트만의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를 읽고 그야말로 "짜릿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니까.) 그렇지 않고 여전히 "무식이 자랑"인 우리나라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마인드로 읽어보면 불트만은 여전히 "사탄마귀"에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신앙은 제대로 된 지식에서 나온다. 나야 솔직히 도올의 "굿판"에는 질릴 대로 질린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덕분에 뭔가 신선한 충격을 받을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물론 그거,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일 거다. 도올이 언제는 뭐 신선한 이야기 한 적 있었나. 자기도 다 여기저기서 듣고 보고 배운 거지.)
■Jesus Christ and Mythology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현대 신학에서 신화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책을 꼽자면 아마도
루돌프 불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서에 담긴 각종 신화적 모티브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특히 기존의 계몽주의적 접근 방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관한
현대 신학의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옮긴이 말
Ⅰ. 예수의 메시지와 신화의 문제
Ⅱ. 신화적 종말론의 해석
Ⅲ. 그리스도교 메시지와 현대의 세계관
Ⅳ. 현대의 성서해석과 실존주의 철학
Ⅴ. 행동하는 자로서의 하느님의 의미
부록/ 독자를 위한 도움글 :
볼트만 신학의 핵김과 그 문제점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
루돌프 불트만 지음, 허혁 옮김/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머리말
I. 구약성서적 유산
1. 하나님과 세계
2. 하나님과 민족
3. 하나님과 인간
II. 유대교
1. 회당과 율법
2. 희망
3. 헬레니즘 유대교
III. 그리스적 유산
1. 그리스적 폴리스
2.학문과 세계관
IV. 헬레니즘
1. 스토아적 현인의 이상
2. 성신종교, 운명신앙과 점성학
3. 밀의 종교
4. 영지주의
V. 초대 기독교
1. 절충주의적 현상
2. 인간과, 시간에 대한 그의 관계
3. 세계 內에서의 인간의 상황
4. 구원(救援)
문헌소개
역자후기
I. 구약성서적 유산
P9 구약에는 그리스적인 아르케, 즉 세계의 기원 ━ 이 기원은 세계의 구조 속에 항상 현재하는 것이며, 이것에 의해 세계의 구조와 세계 안의 사건은 사유에 있어서 통일적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 에 대한 물음이 없다. 물론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옛부터 영원히 모든 산 것과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세계의 창조자로서 그렇다! 이것은 그 근본 의도에 있어서 세계의 성립을 설명하려는 우주론의 명제가 아니라 하나님, 즉 세계가 그의 것이고 그의 힘이 세계를 지탱하고 그의 섭리가 인간을 보존하고 인간은 그에게 순종할 의무를 가지는 하나님을 자기의 주(主)로 고백하는 인간의 고백이다.
15 인간의 피조성은 그가 자연과 자연사건에 예속된 존재임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세계의 존재로서 세계에 종속된 것이 아니고 세계에 대립해 서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견유학파나 스토아학파, 혹은 에피큐로스파의 경우에서와 같은 문제, 즉 인간은 어떻게 자연 운행의 규칙적 과정에서 그의 독자성을 얻을 수 있는가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세계는, 말하자면 인간에게 그의 체험의 장소로서 그의 일과 운명의 영역으로서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세계에서부터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간에서부터 이해된다. 세계는 물론 인간에게 있어서 친숙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계는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산 것이고 또 숙명으로서 인간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본래의 지배권은 하나님에 속한 것이다. 또 하나님에 예속되어 있음을 아는 것은 동시에 그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30 구약적 하나님 신앙 일반에 포함되어 있는 주제, 즉 알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의 주제가 극단적으로 발전되었다. 말하자면 사람이 자신의 뜻과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을 때 바로 하나님은 구원의 미래를 일으킨다는 신뢰와도 결합될 수 있는 자포자기의 주제가 발전되었다. 여기에서 특유한 신앙개념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사실로 여기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겸손한 복종에서, 조용한 기다림에서 그를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
45 육과 마찬가지로 생명도 무상한 것이고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영혼 불멸 사상은 구약에는 없다. 이 사상은 후에 그리스 문화권에서 헬레니즘적 유대교에 침투된 것이다. 반면 몸의 부활 관념은 이란 종교에서부터 팔레스틴 유대교로 침투해 왔다. 이 관념은 구약에서는 후기에 기록된 몇 부분에서만 볼 수 있다. 구약은 인간 생활의 장소로서 오직 이 지상을 알 뿐이고 죽은 자들은 망령으로서 지하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46 '고귀한 죽음’이라는 이념은 없다. 이와 함께 물론 자살의 정당화와 영웅화도 없다. 죽음을 막을 방법도 없지만 인간은 삶에 지치고 피로하여 무덤에 묻힐 때까지 오래 살도록 힘쓸 수 있다. 길고 복된 삶은
개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이것을 약속하는 반면 죄인은 단명으로 벌한다. 죽음이 모두 죄에 대한 벌이라는 사상 또한 구약에는 없다. 아담의 범행에 대한 벌은 죽음이 아니라 낙원에서의 추방이고 노동의 괴로움이었다.
54 요컨대 죄는 그때 그때 어떤 한 계명을 범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배에 대한 의혹이며 이와 함께 언약의 확실성과 그의 요구들의 타당성에 대한 의혹 ━ 즉 저 유혹적인, 낙원에서의 뱀의 말, "하나님이 말하였느냐?" 같은 ━ 이며 그의 약속의 확실성에 대한 의혹이다. 죄는 지금까지의 그의 섭리에 대한 불평이며 그의 미래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다. 죄는 감사하지 않음과 불성실이며 불신앙이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신뢰로서의 신앙 및 하나님 경외에 반대되는 것이다.
II. 유대교
75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전연 자유가 없다. 그는 그 전부가 요구되었고 맡긴 돈 비유(마 25:14-30) 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삶 전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마 25:14-30).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공로에 의거해서 하나님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종과 같다(눅 17:7-10). 하나님은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그의 품 삯을 줄 것이다. 그러나 공로와 품삯을 계산에 넣는 일은 단연 거부된다. 마지막 시간에 일한 일꾼이 하루 종일 일한 일꾼과 같은 품삯을 받는다(마20:1-15). 개인이 당한 특별한 불행에서 그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될 뿐이다(눅 13:1-5). 오만한 자를 하나님은 혐오한다(눅16:15). 그리고 자기 덕을 자랑하는 바리새인은 눈을 바로 들지 못하는 세리보다 못 하다(눅 18:9-14).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맡기고 권리와 공로를 내세울 줄 모르는 어린이 같아야 한다.
84 전통적 일반적 형테에서의 희망은 민족적 희망, 죽 다윗 혈퉁의 왕인 '메시야'가 지배하는 다윗 왕국의 재건에 대한 희망이었다.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초기에는 구원을 가져올 초자연적 인물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다윗 왕조 복구에 대한 기대였다. 즉 구원의 새 시대를 가져올 메시야는 인간으로 생각된 것이다.
90 그는 이미 지나간 세계사의 시대들을 돌아다보지도, 언제 마지막 때가 올 것인가를 헤아리지도 않는다. 그는 자연 및 민족세계에서 마지막의 가까움을 인식하게 하는 징조를 탐색할 것을 명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심판과 부활, 미래의 영광에 대해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때에는 하나님이 지배하리라는 한 사상에 홉수된 것이다. 그러므로 극히 소수의 묵시문학적 미래 상의 표현만이 그에게서 되풀이되고 있다 뿐 예수가 현 세계시는 끝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설교의 종합인 "때는 차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다"(막 1:15)는 말은 가까운 미래를 지시하는, 그리고 현재를 결단의 때로 특징짓는 그의 여러 말들에 일치한다.
III. 그리스적 유산
131 인간은 코스모스 안에 존재하고 코스모스를 합리적 사유에 의해 객관화하면서 그의 실존을 코스모스 안에서 이해하려 한다. 코스모스는 '근원'에 대한 물음에서 법칙에 맞게 정돈된 통일체로 이해된다. ━ 바로 '조화'로서: 현인들은 말한다 : "하늘과 땅, 신들과 인간들은 공동체로 우정과 조화와 자제와 의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인들은 세계전체를 질서(코스모스)라고 하고 가령 무질서 혹은 무정부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신들과 사람들 사이의 수학적 관계에 세력이 있다는 것을 너는 아마 모르는 모양이다," 세계 영은 조화이고 음악은 "존재의, 만물을 소생케 하는 코스모스적 원동력의 최종적 드러남이다."
136 그러므로 과제는 만물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형태를 제공하는 법칙들 아래서 모든 개체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모든 개체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을 이 법칙들의 요구에 의해 처리하고 그렇게 함으로 자신을 예술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코스모스의 봉일성에 첨가시키는 것, 즉 무 시간적인 것의 영원에서, 영원에서 실존하는 것이 과제이다. 인간은 이를 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 그는 본질적으로 다름아닌 정신이다.
IV. 헬레니즘
160 물론 밀의교들도 그때 그때의 특유한, 그리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비밀히 거행되는 예배와 헌신 의식에 의해 폐쇄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 교단에 속한다고 해서 국가적인 폴리스 예배에 참례하는 것도, 다른 밀의교들에 입교하는 것도 전적으로 금지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밀의교들은 유대교나 기독교와 같은 교회적 통일체를 이루지 못했다.
165 영지주의는 처음에는 기독교내의 움직임으로 연구의 흥미를 끌면서 오랫동안 명백한, 기독교내의 산물로 생각되었다. 기독교적 신앙이 사변적인 신학으로 변질된 것으로서 기독교의 '철저한 헬레니즘화'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차츰 영지주의가 사실은 기독교보다 앞선 근원을 가진 종교적 움직임이고 여러 다른 형태를 가지고 기독교의 경쟁자로서 근동에서부터 서방세계에 침투해 온 것이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영지주의는 자체의 표현을 위해 여러 다른 신화론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전통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의 혼합적 현상으로 성격 지을 수 있다.
166 영지주의적 신화는 ━ 여러가지 변형으로 ━ 영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의 빛 세계에 있는 영의 근원에 대해, 영의 비극적 타락과 지상에서의 나그네 됨, 몸 안에의 유폐, 그의 해방과 마지막에 빛의 세계로의 승천에 관해 보도한다. 영 ━ 영지주의의 언어로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본래적인 내적인 자아 ━ 은 하늘의 빛(원인간)의 일부, 한 조각, 불꽃인데 이 빛은 창세 전에 악마적인 암흑의 세력들의 지배권에 빠져들어간 것이다. 이 몰락에 대한 서술 방식에서 설화의 각 형식이 구별된다.
V. 초대 기독교
176 결정적인 걸음이 내디뎌진 것은 예수에 관한 소식, 즉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자, 올 심판자이며 구원을 가져올 자에 관한 소식이 팔레스틴 유대교 영역을 넘어선 것과 기독교회들이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생긴 것과 함께 일어났다.
177 기독교 신앙은 이제 새로운 정신 세계에 등장했다. 그의 선포는 헬레니즘 세계의 청중을 이해시킬 수 있는 언어, 그리고 그들의 개념 세계의 말이어야 했을 것이고 듣는 자들은 그 소식을 그들의 방식, 즉 그들의 동경과 제기된 문재에 의해 해석했음은 분명하다. 그 결과 여러 다른 전형들이 생겼다.
208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 세상에 대한 근본적으로 변증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 시민적인 의무들과 정치적 사회적 과제들에 대한 생소함이 원칙적으로가 아니라 시대사적으로 규정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세계종말의 임박한 대망과 그 성원들이 거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도맡는다는 생각에 미칠 수 없게 한 처음 기독교 공동체들의 구성에 달린 것이었다.
209 미래는 원칙적으로 영지주의에서와 같이 환상적인 우주적 상태로서 이해될 수도, 신약성서의 묵시문학적 미래상들과도 함께 이해될 수 없다. 이 미래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끊임없는 앞섬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어디를 향해 가든지 설사 죽음의 어두운 곳일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이미 앞서 와 있다. 바울은 물론 우리를 위해 계시될 영광(롬 8 : 18), 우리를 기다리는 영원한 '마지막' 영광(고후 4:17) 을 말한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 사랑 자체는 '완전한 것'에 이르러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말한다(고후 13 : 13). 그러나 다시 말하면 그는 비세계적인 것이 단순한 소유가 되는 완성을 생각지 못한다. 다른 말로 : 기족교적 실존의 개방은 끝을 모른다.
Jesus Christ and Mythology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루돌프 불트만 / 성광문화사 / 1981
‘그리스도 신화론’은 역사적 예수의 실존에 의심을 품는 예수론을 말한다. 여기에는 나사렛의 예수라는 존재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고대 신화의 구성을 차용한 완전한 허구라는 관점에서부터, 기원전 1~2세기에 존재했던 종교 지도자의 생애에 대한 전승이 각색되어 창조된 혼합적 인격이라는 관점과, 복음서가 다루는 예수에는 첨가된 내용이 많아 실제 역사 인물을 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관점까지가 포함된다.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신약에서 다루는 예수의 실존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빈약하고, 복음서의 예수가 미트라교와 같은 로마 제국 시대 밀의 종교의 신들과 삶-죽음-부활 구성의 뚜렷한 유사점을 가진다는 점에 대해서 지적한다.
신화적 예수론은 최초에 1870년대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콘스탄틴-프랑소와 볼니와 샤를 프랑소와 뒤피에 의해 제안되었지만, 역사가이자 이론가인 부르노 바우어가 20세기 초 성서 연구 분야에서 주목받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 1840년대까지는 학자들에 의해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얼 도허티나 로버트 M. 프라이스, 조지 앨버트 웰스 같은 저자들에 의해 이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부상하였다. 그러나 주류 성서 역사가나 학자들은 이 이론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한편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독:Entmythologisierung)란 종교적인 본문들에 대해해 해석학적 방법을 시도할때 철학적, 윤리적, 그리고 신학적 교훈들로 부터 우주론적이며 역사적 주장의 분리하도록 추구하는 것이다. 루돌프 불트만 (Rudolf Bultmann, 1884~1976)이 1941년 신약성서와 신화 (New Testament and Mythology)에서 비신화화란 용어를 이런 맥락에서 소개했지만 이 개념은 그 보다더 이전에 있었다(성경에 대한 스피노자의 해석학적 접근, 칸트의 오직 이성의 한계내에서 종교 등).
불트만은 현대의 남성과 여성에게 우주의 외계인을 그리게 하는, 하늘의 도시나 삼층적 우주 같은 신화적인 용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트만은 그런 신화적 용어들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성서와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에 나타나는 고유한 구원의 메시지를 함께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현대적이고 철학적이며 심리학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다시 쓰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현대의 남성과 여성은, 신화적인 용어가 더 이상 전달하지 못하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불트만은 그의 신학적 저술에서 기독교 메시지의 신화적인 표현을, 새롭고 실존적인 해석으로 교체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성서의 역사적 관점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도 성서의 “비신화화 (demythologization)”를 요청하는 불트만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았다.
“양식비평의 목표는, 주 예수의 말씀이나 비유, 또는 이야기의 조각이 지니는, 원래의 양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차적인 추가와 양식들을 구분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러한 배움은 전통의 역사에서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 불트만, ‘공관복음서 전승사’
불트만의 ‘공관복음서 전승사’ (1921년)는 여전히 복음서 연구에서, 틀에 박힌 수사학적인 어구나, 모여서 복음서를 형성한 이야기 단위들에 대한 그의 분석과 불트만이 가장 영향력있는 해설자이었던 이른바 “양식 비평”이라는, 역사적으로 기원을 분석하는 방법을, 거부하는 학자들에게조차 필수적인 도구로 간주된다.
○ 저자소개 : 루돌프 볼트만 (Rudolf Bultmann, 1884 ~ 1976)
20세기 신학의 지도적 신학자이며 특히 신약학계의 석학인 R.불트만은 1884년 독일 비펠스테데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튀밍겐, 베를린, 마르부르크 등에서 수학했다. 1912년 신약학 교수 자격을 마르부르크에서 얻고 그곳에서 1921년부터 1951년까지 은퇴할 때까지 신약을 강의했다. H.궁켈, 율리허, 하르낙 등에 사사하고 특히 W.헤르만에게서 큰 영향을 받고 M.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을 거쳤으며 고전 문헌 학자인 P.프리들랜더와 교류하여 문헌학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의미에서 그와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바르트와는 바르트가 편집인으로 있었던 “변증법적 신학”에 가담하면서 관련을 맺었다. 1921년에 발표된 “공관복음서 전승사”와 1938년의 “요한복음서”로 신약학자로서 주목을 받게 된 그는 신약의 세계상을 현대인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시도로서 신학계와 철학계의 찬반 양론의 논쟁을 일으켰다.
저서로 ‘예수'(1926), ‘신약성서의 신학'(3권, 1948∼1953), ‘공관복음 전승사’,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등이 있다.
– 역자 : 허혁
191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감리교 신학대학 (학사), 독일 뮌스터대학 신학부 (Dr. Theol)를 졸업하였고,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옮긴책으로 ‘공관복음서 전승사’, ‘예수’,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에레미아스의 ‘예수의 비유’, 보만의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폰라트의 ‘구약성서신학(I·II·III)’, 에벨링의 ‘신앙의 본질’, 로핑크의 ‘당신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융엘의 ‘바울과 예수’ 등이 있다.
○ 독자의 평 1
– 예수의 소식과 신화의 문제
1. 예수의 설교에서 중심은 하나님 나라다.
19세기 주석학과 신학은 하나님 나라를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신들의 뜻을 규제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공동체로 이해했다. 이 공동체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 지배의 영향 영역을 세계에 확대시키려고 한다. 하나님 나라는 정신적인 나라지만 (동시에)세계내적인 나라로서,(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세움으로써 그것이 세계 안에서 작용하며 역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계의 역사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바이스는 1892년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설교’ (Die Predigt Jesu vom Reiche Gottes, 제2판 1900)를 발표했다. 이 획기적인 저서는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해석을 거부했다. 바이스는 하나님 나라가 세계 안에 있지 않으며 세계사의 일부로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 질서를 초월해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것은 사람들의 도덕적인 노력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 행위를 통해서만 세워지며 하나님은 갑작스럽게 세계와 역사에 종막을 내리고 새로운 세계, 영원한 축복의 세계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표상은 예수가 발견하지 않았으며 이 세계의 종말을 기다리는 유대교 종파에는 이러한 표상이 이미 친숙했다. 종말론적 드라마의 이러한 표상은 유대교 묵시문학 문헌에 묘사되어 있다. 다니엘서는 이러한 표상을 보존하고 있는 증언 중 가장 오래된 문서다. 예수의 설교는 종말드라마와 오고 있는 세대의 축복에 대한 전형적 묵시문학적 표상들과 구별되는 바, 예수는 그러한 개별적인 표상들을 그리는 데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사람들은 오고 있는 심판에 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진술로 표상을 한정시켜서 말한다.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그 시대들의 종말론적인 기대들에 대한 참여다. 그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오며, 당신의 나라를 임하게 하오며, 당신의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땅 위에서도 이루소서!
예수는 임박한 종말을 말했다. 그는 자신이 수행하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특별히 자신의 귀신축출을 통해 이러한 시대의 동틈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시초를 위력적인 우주적 드라마로 생각했다. 인자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내려와서 죽은 자들을 일깨우면 심판의 날이 시작된다. 의인들을 위해서는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고 저주를 받은 자들은 지옥의 고통 속에 던져질 것이다.
내가 신학공부를 시작했을 때, 신학자들과 비신학자들 가릴 것 없이 바이스의 이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교의학 교수 카프탄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바이스가 말한 것이 옳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상이 실제로 종말론적이라면 이 표상을 교의학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다음 해에 신학자들(물론 카프탄도)은 바이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승인했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슈바이처를 소개해야 할 것이다. 슈바이처는 예수의 설교와 자기의식 뿐 아니라 그의 일상생활 역시 종말론적 대망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이 대망은 모든 것에 침투된 마지막 일들에 관한 도그마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표상이 종말론적이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적어도 유럽 신학계에는 없으며,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메리카의 신학자들 중에도 없다. 종말론적 설교 일반이 신약성서 설교 일반의 핵심이라는 것은 오히려 점점 더 분명해졌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도 하나님 나라를 예수와 같은 의미로 이해했다. 초기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장래에 임하리라 고대했다. 바울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그가 살아 있을 때 이 세계의 마지막이 오고 죽은 자들이 일깨워지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신념은 초조하고 불안한, 회의적인 말들에 의해 확인된다. 이 말들은 공관복음서에서 제시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베드로 후서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희망을,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장래에 임한다는 희망을 각성시킴으로써 지키려 했다. 그것은 헛된 수고였다. 이런 경우를 마가 9:1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은 예수 자신의 말이 아니라 옛 공동체에 속하는 말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때까지 죽지 않으리라.” 이 구절의 의미는 일의적인가? 예수와 동시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죽었는데도 하나님 나라가 아직 이 세대 중에 임하리라는 희망을 각성함으로써 지켜져야 했다.
2. 예수와 원그리스도인들이 참여했던 이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일한 세계가 여전히 존속하며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역사의 흐름은 신화를 거부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표상은, 말하자면 신화적이다. 그것은 마지막 드라마에 대한 표상이 신화적인 것과 같다. 하나님 나라의 대망을 위한 전제들 곧 세계가 악마인 사탄에 의해)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지라도) 지배되며 사탄의 사자들 즉 귀신들은 모든 불행의 근원, 죄와 질병의 원인이라는 이론들 역시 신화적이다. 예수의 설교와 신약성서에 일반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전세계이해 또한 신화적이다. 하늘과 땅, 지옥 등 삼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표상도, 초자연적 힘이 사람의 영적 생활에 개입하여 영향을 끼친다는 이적표상도, 인간이 악마에 의해 유혹을 받으며 타락하고 악한 영들에 의해 접신될 수 있다는 표상도 신화적이다. 우리가 이러한 세계상을 신화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세계상이 학문에 의해 고전 그리스에서 형성되고 발전된,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세계상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 근대적 세계상의 근저에는 원인과 결과의 결합이 들어 있다. 원자현상에서의 현대 물리학 이론이 우연을 계산에 넣는다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계획들과 우리의 행위, 우리의 생활이 영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근대의 학문은 자연의 움직임이 초자연적 힘에 의해 중지, 또는 규제당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의 역사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의 역사 연구는 역사의 흐름에 신이나 악마, 귀신들이 개입한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역사의 흐름은 중단되지 않는 전제로 관찰된다. 설사 사람들이 의지에 영향을 주는 정신적 힘이 역사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의 현상과 구분될지라도 그것은 스스로 완전하다.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반드시 자연법칙들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 할지라도 이성적으로 밝혀지는 근거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 그렇지 않으면 사실 책임이 해소될 것이다. 물론 현대인들 역시 여전히 많은 미신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에 속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파악된다. 오늘날 인간은 그 자신의 내면적 생활과 실천적인 생활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역사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이 초자연적 힘에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기본 사상 위에 생활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물음이 불가피하게 제기된다 :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가 오늘날 인간에게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가? 신약성서의 선포는 현대인을 위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 신약성서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그의 선포 뿐 아니라 처음부터 원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신화화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신약성서학자들은 예수가 메시아로서, 구원시대의 왕으로서 자처했는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내려올 인자로 스스로를 믿었는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예수는 자신을 신화에 비추어 이해한 것이다. 여기서 후자나 전자를 결단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신화적 인물로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예수가 인자로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다시 와 세계의 심판자로서 구원과 형벌을 가져오리라 기대했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서 출생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를 신화에 비추어 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이방계 그리스도교에서 한층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방계 그리스도에서 예수는 형이상학적 의미의 신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고난을 스스로 진 위대한 선재적 하늘 존재로 이해되었다. 그러한 표상들이 신화적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신화 중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으며 후에 역사적 인물인 예수에게 전용되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계에 내려온 선재적 신의 아들에 대한 표상은 특별히 영지주의적 구속론의 일부인 바 이 이론을 “신화적”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이로부터 심각한 물음이 제기된다. 예수에 대한 설교와 모든 신약성서의 설교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신화적 세계상과 종말 및 구세주, 구속에 관한 표상은 오늘날의 인간을 위해서는 이미 지나간, 끝난 표상들이다. 우리가 성실하게 참된 것으로 여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성을 희생 (sacrificium intellectus)하기를 기대해야하는가? 또는 그러한 신화적 표상들을 포함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구절들을 제외시키며 현대인에게 상충되지 않는 말들만 모을 것인가? 실제로 예수의 선포에 종말론적 확언만 있지는 않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 즉 선을 위한 계명인 하나님의 뜻 또한 선포했다. 그는 참됨과 순수함, 희생 및 사랑을 위한 자발성 역시 요구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전인적 순종을 요구했으며, 어떠한 피상적인 계명들을 유보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오에 저항했다. 현대인이 예수의 윤리적 계명들과 충돌한다면 이는 그 계명들을 자신의 이기적인 의지에 대한 방해물로 간주해서이지, 결코 자신의 이해와 충돌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예수의 윤리적 설교는 지키고 그의 종말론적 설교는 버려야 한다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의 설교를 이른바 “사회적인 복음”으로 종합해야 할 것인가? 또는 제3의 가능성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우선 종말론적 설교와 신화적 확언들 중에 전체로서 신화에 가리워져 있는 더 깊은 의의가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의의를 보존키 위해 신화적인 표상들을 제거해야 한다. 신화적 표상들 뒤에 들어 있는 더 깊은 의의를 다시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는 신약성서의 해석방법을 나는-완전히 만족할만한 표현은 아니지만- “비신화화”라 부른다. 비신화화의 목표는 신화적 진술들의 삭제가 아니라, 그것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신화화”는 해석의 방법이다. 이 방법의 가치는 우리가 신화 일반의 의의를 밝힐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신화는 자주 원시적 학문으로 간주된다.
신화는 기이하고 특수한, 놀랍고 두려운 현상들과 사건들을 초자연적인 원인들, 또는 신들, 귀신들에 귀속시키면서 해명하려 한다. 이 사실은 가령 일식이나 월식현상을 그러한 원인들에 귀속시킨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신화는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신화들은 신들과 귀신들을 인간을 예속시키는 힘으로, 축복하는 힘이자 진노하는 힘으로 선포한다. 신화는 인간이 세계와 그 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과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수수께끼와 신비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 인간의 삶 역시 수수께끼들과 신비로운 일들로 채워져 있다는 통찰을 명시적으로 표현한다.
신화는 인간실존에 관한 특정한 이해의 표현이다. 신화는 세계와 삶의 근거와 한계가 우리가 계산하며 조정할 수 있는 모든 것 외부에 있는 힘에 있다고 믿는다. 신화는 불충분한, 불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이 힘에 관해 말한다. 신화는 저 힘을 마치 차안적인 힘에 관해 이야기하듯 말하기 때문이다. 신화는 가시적인,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피안에 힘을 행사하는 신들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신화는 신들을 마치 사람들인 것처럼 그들의 행위들을 인간의 행위들처럼 말한다. 물론 신화는 신들을 초자연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들의 행위를 헤아릴 수 없다고, 사건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질서를 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판단하면서도 그렇게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화는 초월적인 현실성을 내재적인 차안적 객관성으로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화는 피안적인 것을 차안적인 것으로 객관화한다.
이 모든 것은 성서의 신화적 표상들에도 해당된다. 신화적 사유에 의하면 신은 하늘에 있다. 이 확언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의의는 매우 간단한다; 신이 세계 밖에 있으며 초월적이라는 것을 소박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초월성이라는 추상적인 이념을 아직 표현할 수 없던 인간의 사유는 그 의도를 공간의 범주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초월적인 신을 공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를 벗어나 아주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세계 위에는 인간의 삶을 밝고 행복하게 만드는 별들과 빛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화적 사유는 지옥에 관한 표상을 만들어냈을 때 악의 초월성에 관한 이념을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무서운 힘으로 표현했다. 지옥과 지옥에 의해 포박된 사람들의 거처는 어두운 지하세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둠이 인간에게 무시무시하며 두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늘과 지옥에 관한 이 신화적 표상들은 이제 현대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학문적인 사유에서는 우주의 ‘위’과 ‘아래’에 관한 논술이 모든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악마의 초월성 이념은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다른 예는 사람들이 던져져 있는 사탄과 영적 힘에 관한 이념이다. 이 표상은 우리가 던져져 있는, 우리 자신 밖에 있는 모든 악을 도외시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일상에서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한다는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흔히 우리는 그 자신의 격정에 휘말리며 또 그 격정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이 솟아올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세계의 지배자로서 사탄에 대한 표상은 다음과 같은 깊은 통찰을 표현한다; 악은 세계의 여기저기서 발견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개별적인 불행, 사람들의 행위로부터 자라나 결국 모든 사람을 위압하는 정신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힘이 있음에 대한 통찰이다. 우리 범죄들의 결과들과 작용들은 우리를 지배하는 하나의 힘으로 化하고 우리 스스로는 그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특별히 우리 시대에는-오늘날 우리는 이미 신화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도-역사를 지배하며 정치적, 사회적 생활을 부패하게 하는 악마적 힘이 자주 거론된다. 그러한 언어는 은유적이며 구상적인 언어다. 그러나 그것으로, 각자가 책임을 져야하는데도 악이 하나의 세력으로 분해 기이하게도 인간 사회의 각 구성원을 노예화한다는 사실의 통찰과 인식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다음 문제가 제기된다. 예수에 관한 소식과 원그리스도교의 설교를 비신화화할 수 있는가? 이 설교는 마지막 일들에 대한 신앙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선 다음의 물음이 답해져야 한다. 종말론 일반의 의미는 무엇인가?
○ 독자의 평 2
이 책의 저자 루돌프 불트만은 20세기에 활동한 현대 신학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이다. 특히 그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눈부신 활동을 하였으며 그는 신약 성경 학자였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현대의 지성에게 이해시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신약 성경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을 채택했다. 그것은 고대 문서의 메시지가 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개인의 신앙적 반응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는 신약 성경의 주해와 조직신학 사이에 격차가 없는 것으로 보았으며, 오히려 양자의 임무는 신약 성경을 통하여 그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인간의 실존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신학이 실존주의 쪽으로 흘러가면서 급기야 그의 신학 사상은 1941년에 비신화화를 주장하기에 이르게 되고 당시에 유행했던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도 성서의 “비신화화를 요청하는 불트만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았다. 나름대로 당시 유럽에 신학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각종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개혁주의의 3대 사상 중의 하나가 바로 “오직 성경”인데 인간의 실존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유일하신 하나님 중심사상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역할을 감당하는데 큰 공을 한 그의 신학사상 때문일 것이며 이 사상이 당시 시대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불트만이 가지고 있는 최우선적 관심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마다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실재와 실존적으로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비신화화 작업은 이러한 만남이 가능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라고 한다.
실존주의로 신학을 끌고 간 불트만의 열심어린 노력으로 인해 그들의 신학의 중심에서 대속사상이 결여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가 인간에게 있음을 부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 독자의 평 3
불트만은 신학에 있어서 전시대에 토론되었던 거의 모든 신학적 경향들을 종합(synthesis)하여 하나의 거대한 통일체로 수립한 사람이었다. 모든 사상적 경향들이 불트만에게 와서 시종일관한 형태로 통합되어 그의 신학에 나타나고 있다. 이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 루터 신학의 영향이다. 불트만은 자신의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강조, 즉 케리그마의 강조는 루터의 하나님의 말씀의 강조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신학은 비록 의인론을 강조하나 이는 정통 루터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불트만이 이 모든 것을 다 재해석하고 왜곡한 것으로 평가된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불트만의 신학이 루터교의 배경은 가지고 있으나 루터적인 것은 아니라고 비판한다. 불트만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루터의 가르침의 형식을 따랐지만 루터와 같이 그리스도 사건과 성령의 사역에서부터 출발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 성령을 떠나서 신앙의 실존적 결단을 먼저 강조함으로써 신학으로 하여금 실존 철학의 포로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불트만의 신학을 ‘비종교 개혁적’이라고 비판했다.
○ R. 불트만의 ‘신약성경 비신화화‘ 시도 _ 김기홍
루돌프 불트만 (1884∼1976)은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실존주의 신학자 중 하나였다. 그는 ‘신약성경의 비신화화’로 유명하다. 그는 양식비평을 사용해서 신약성경을 해석해 보았다. 그래서 1세기 사람들의 상황에서 나온 복음서를 20세기 사람들에게 재해석해 주었다.
– 실존주의적 역사관
19세기는 역사적 사실을 과학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단지 이름, 장소, 날짜, 일어난 일, 순서, 원인, 결과 등 한 마디로 연대기를 역사라고 말하게 된다. 그것으로는 역사의 내면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신학자들은 예수의 일생을 같은 방법으로 연구했다. 모든 초자연적인 것들을 비과학적으로 보아 제쳐놓고 순전히 인간적인 수준의 예수를 그려놓는다. 그리고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렇게 만든 예수전은 물론 저자의 이해와 입장을 표현할 뿐이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실존주의자들은 과거 사건의 내면을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니까 성경의 내용을 19세기 식의 과학적인 눈으로 보는 것은 같았다. 성경의 초자연적인 내용은 모두 제해 놓은 뒤에 20세기 현대인의 실존을 통해 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불트만에게는 더욱 이 점이 분명하였다. 그는 신앙과 역사를 단절시켜 놓는다. 역사적 방법으로 본 성경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는 현재 신자들의 경험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말로 하면 2천 년 전에 역사상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오늘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다. 과학적으로 사실적으로 무엇이 일어났느냐보다는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보는 실존적인 방법이었다. 1세기 성경저자는 그 나름대로 삶의 정황이 있다. 천국은 위에 있고 지옥은 아래 있다. 역시 천사도 위에 귀신도 아래 있다. 삼층구조의 세계이다. 그런 의식구조로 쓴 성경을 현대의 독자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은 당시의 내용을 정확하게 살펴본 뒤에 현대의 독자들의 삶의 정황에 맞도록 해석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삶에 대한 결단을 내리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세기 저자들의 삶의 정황 곧 삶의 이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 역사와 신앙의 분리
불트만의 역사와 신앙의 분리는 세 가지 이유이다. 첫째로 그의 주된 관심은 20세기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초자연이나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1세기에 쓰여졌던 복음서를 그대로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가 물 위로 걸었다든지 귀신을 쫓아내었다든지 죽은 뒤에 육체로 다시 부활했다든지 하는 내용은 복음의 본질적인 것도 아닐 뿐 아니라 해로운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신화는 현대인들에게 참 복음을 들려주기 위해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복음이 역사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역사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언제든지 해석하는 사람의 해석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 연구의 결과를 불변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셋째로 그러기 때문에 불트만은 신교의 전통적인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 위에 서기로 결심한다. 성경의 가르침이 신화와 뒤섞여 있기에 신앙을 위한 객관적인 지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그냥 개인적인 결단일 뿐이었다.
“하나님을 믿으려는 이는 신앙을 세울 만한 아무것도 자신에게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허공에 떠있듯 들려지는 말씀의 증거를 요구할 수 없다. 신앙의 근거와 대상은 같기 때문이다. 안전은 모든 안전을 버리고 어둠 속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 얻어진다.”
그 이유는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내게 개인적으로 들려주는 말씀이 된다. 그것은 실존 일반에 대해서 가르쳐줄 뿐 아니라 참된 실존을 준다”고 말한다. 얼마나 실존적, 아니 주관적인 말인가!
– 신약성서의 비신화화
“객관적인 용어로 표현된 ‘신화적’ 세계관 속에 사로잡힌 신앙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었다.” 불트만의 말이다. 그래서 그가 평생 시도한 것이 ‘신약성경의 비신화화’였다. 비신화화라는 말은 신화를 다시 벗겨내서 본래의 모습을 찾겠다는 시도를 의미한다. 삼층구조로 세계를 보았던 1세기 저자들의 정황을 이해해서 당시 상황을 재현해야 한다.
신약에 포함된 설교들, 비유들, 기사들, 잠언들 이것저것 살펴보니 예수 자신의 것이 거의 없어 보였다. “너희 조상은 이렇게 저렇게 말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 내용만이 예수 자신의 말일 가능성이 있었다. 여하간에 예수의 본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신앙의 근거로서의 객관적인 지식을 거절하게 된다. 요한복음을 보면서 그는 요한이 “객관적 내용을 기술하지 않고 계시의 사실을 그리고 있다” 했다. 다시 말해서 요한의 글은 전혀 역사적인 사실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평생 연구해서 얻은 ‘비신화화’의 결론은 1세기 유대인들의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현대인들 아니 20세기 독일 사람의 삶의 정황으로 본 1세기였다. 이처럼 실존주의적 접근은 시작과 끝이 모두 너무도 주관적이었다.
신화로 가득 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설교를 읽고 독자는 신앙과 불신앙 그리고 참된 삶과 거짓 삶 중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입장이 된다. 요구되는 것은 이 사건의 진실성을 믿는 게 아니다.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것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트만이 말하는 신앙이었다.
○ 불트만(R. Bultmann)과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922~28년 불트만 (R. Bultmann)은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와 함께 일했다. 1927년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을 발간한 하이데거는 불트만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전개된 인간 실존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이 불트만 자신이 해석한 바울 신학과 요한 신학의 인간 실존 이해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와 토론을 벌인 이 몇 년 동안 불트만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발전시켰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한 대신에 초월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교회의 케리그마 (Kērygma, 선포)에 대한 신앙이며, 예수는 케리그마 속으로 부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트만의 부활 이해)고 전제한 불트만은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견해가 최초로 표현된 것은 ‘신약성서의 계시 개념’ (Der Begriff der Offenbarung im Neuen Testament, 1929), ‘현존재의 역사성과 신앙’ (Die Geschichtlichkeit des Daseins und der Glaube, 1930) 등에서이다. 불트만의 이런 입장은 그 후 계속 유지되었으며, 1941년의 비신화화 제안을 포함한 그의 모든 저작들은 이를 일관성 있게 발전시켰다.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할 때 불트만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가르침을 수정해 나치 이데올로기에 맞추기를 거부했고, 나치의 교회 정책에 대항해 조직된 독일 프로테스탄트 운동인 고백교회를 지지했다. 그러나 자신의 말 그대로 그는 “결코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는 나치 정권을 정면으로는 반대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대학교와 세계의 다른 대학교 사이에 교류가 재개되면서 불트만은 국제적인 학술분야의 주요인사가 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독일대학교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그의 견해들은 전 세계적으로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신약학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어야 했고, 신학자들 가운데서 불트만의 입장은 독일과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신학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불트만은 1955년 영국에서 ‘역사와 종말론’ (History and Eschatology:The Presence of Eternity)을 강의했고, 1958년 미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Jesus Christ and Mythology)를 강의했는데, 이 강의들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볼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케리그마와 신화’ (Kerygma und Mythos) 시리즈의 주제가 되었다.
불트만은 탁월한 스승이었으며, 제자들에게 정신의 독립성을 북돋웠다. 그 결과 두 갈래의 ‘불트만 학파’가 나타났다. 1954년 E. 케제만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물음’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인식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갖는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고, 많은 제자들은 스승과 무관한 입장을 전개했다. 그러나 E. 푹스와 G. 에벨링은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분석을 토대로 하여 인간 실존의 언어적 양식을 강조하는 신약성서 해석방법을 발전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새로운 해석학 (new hermeneutic)이다. 불트만 자신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제자들과 함께 이 논의에 참여했다. 말년에는 마르부르크에서 조용히 살았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대한 이해 없이 실존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결코 가장이 아니다. 더욱이 볼트만의 신학은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을 신학적인 용어를 바꾸어 놓은 데 불과하다는 혹평을 들을 만큼 하이데거의 사상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을 정도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인간 실존의 보편적 특징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불트만의 인간론의 이론적 근거를 가져다준다. 하이데거의 의하면 인간실존은 참된 실존과 거짓 실존 또는 매일의 실존으로 구별되고 거짓된 실전의 특징은 잡담과 호기심 모호성이라는 것이다. 그의 참된 실존의 특징은 그의 존재에 대한 의식적 반응 즉 ‘세상에의 존재’라고 분석하였다. 하이데거는 실존에 대한 분석과 함께 시간에 분석도 시도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이데거의 유명한 일반역사-초역사의 이중적 역사관을 발견한다. 일반역사란 존재일반 즉 영속적 존재로서 역사의 일반적 차원을 말하며 초역사란 계속해서 일어나는 의미의 역사요 깊이의 역사라는 것이다.
○ 불트만의 비신화화와 그 비판 : 비신화화에 대한 서론적 연구
볼트만의 비신화화를 바로 이해하려면 그의 현대 과학적 세계관과 신앙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여야 한다. 더욱이 두 방법론과 신화의 개념은 신약성경의 신화적 서술에 대한 실존적 해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1. 출발점으로서의 불트만의 현대 과학적 세계관과 신앙의 본질 이해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현대 과학적 세계관에서 출반하였다. 그의 견해는 신약성경 우주관은 그 성격에 있어서 신화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질문하기를 이 신화적 우주를 어떻게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를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불트만은 신약은 신화로 가득 차 있으므로 그것을 현대인에게 선포하기 위하여 그 신화적 요소들을 재해석(再解釋)하여야 한다고 한다. 복음서는 그 당시에 통용했던 신화적 사상 체계를 사용하여 예수의 의미를 표현했으므로 그 신화적 세계관을 현대인의 이해를 위하여 비신화화 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신약의 저자들은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주를 삼층적인 구조 형태로 생각했다. 상층에는 하나님과 천사가 있는 초자연 세계요, 하층엔 사탄이 있는 지옥세계요, 그 사이에 인간 세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삼중적(三重的)인 세계관에는 항상 상호 작용이 있는데 삼층부(三層部)인 영계에서 지상계에 하나님이 간섭하실 때 이적(異蹟) 현상이 생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과학 만능 시대에는 이와 같은 신약 저자들의 신화적 신앙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트만은 신약의 메시지는 독특하여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것은 신약의 복음 속에 케리그마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여 버릴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롭게 다시 해석하여 오늘의 상황에 맞도록 실존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했다. 신약의 신화들은 주로 유대인들의 종말론 사상이나 영지주의나 헬라 신비 종파에서 유래된 것이며, 사람을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로서 설명하고 있다. 인간 스스로는 이런 처지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므로 신적인 간섭, 곧 사탄과 싸워 이기는 신의 은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구원을 이와 같은 이원론으로 설명할 때 신화적 설화 자체는 무용할 뿐이나 그 설화가 내포하고 있는 인간 실존의 의미는 오늘날 인간 실존의 참 뜻을 이해하는 데 아주 유효적절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신약을 다룰 때에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신화적인 설화에 매일 것이 아니라 그 설화 배후에 신약 저자들이 종교적인 경험과 구원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신약 저자들의 고백한 구원 사실과 경험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실존주의적인 해석학의 문제가 따른다.
또 하나의 다른 출발점이 되는 신앙의 본질에 대한 이해이다. 그의 의하면 신앙이란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의 지각 내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 신앙이란 결단 이상도 또는 이하도 아니다. ’ 즉 신앙이란 순종이며 한 걸음 나아가 ‘ 실존에 대한 새로운 이해 ’ 라는 것이다. 불트만의 신앙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앙과 케뤼그마의 상호관계에 대한 주장이다 따라서 불트만에 의하면 역사적 연구는 신앙의 아무런 적극적 의미를 갖지 않으며 케뤼그마 만이 신앙과 관계 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불트만의 세계관과 신앙관을 살피기 전 두 가지를 지적하여 본다.
첫째로, 불트만의 폐쇄된 세계관은 흄(Hume)이래로 많은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하여 포기되어 온 세계관이다.
둘째로, 불트만이 역사로부터 독립된 신앙관을 주장하는 한 그의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였던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 끝없는 이상의 상징밖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2. 불트만의 두 방법론
㈎ 양식사적 방법(樣式史的 方法)
불트만(Bultmann)은 궁켈(H. Gun-kel), 슈미트(K. L. Schumidt)와 함께 양식사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양식사’란 마르틴 디벨리우스(Martin Dibelius, 1883-1947)가 쓴 Die Form Geschichte des Evangeliums에서 영향을 받아 일어난 신약 신학의 한 운동인데, 이 운동을 이어받아 불트만이 더욱 그의 저서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에서 이론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이 ‘공관복음 전승사’에서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아니며 초기 크리스챤들의 종교적 작품에 불과한 사실을 지적한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신약성경이 저술되기 전에 여러 교회에 유포되고 있던 단편적인 구전(口傳)들을 한데 모아서 편집하였기 때문에 복음서의 기록들은 그 역사적 신빙성이 아주 적다고 본다. 그는 역사적인 ‘예수전’을 복음서에서 구하려던 전기 신학자(傳記神學者)들의 신학적 불모성(不毛性)을 지적한다. 복음서 연구는 그러므로 역사적 기록 속에서 예수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예수에 관해서 초대교회가 어떻게 예배하고 선포하였는가를 규명하여야 했다. 우리가 소유한 복음서들의 기록들 이전에 복음서를 구성한 단위 (unit)들을 그들의 양식에 따라 구별하여야 하며 그 당시 권위 있었던 민속자료와 복음서의 단위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비평가들의 자료 구분 방법은 복음서에서 시공간 (視空間)에 관한 언급 (time-space reference)을 제거시키는 것이며 다음으로 각 단위를 찾아낸 후 수식 및 첨가된 이차적 요소들을 다시 제거함으로 그 단위의 원형을 찾아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여과되고 확인된 단위들을 가지고 그것들이 형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역사적 환경을 찾아 그 단위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공관 복음서 거의 전부가 이차적인 자료들로 구성되었다고 단정하였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 기사를 위시하여 광야시험, 변화산 사건 이적, 부활 등 모든 기사가 모두 신화로 취급받게 되었다. 복음서의 신화적 (神話的) 성격을 인정한 후 불트만은 그 신화 처리를 위하여 비신화화 작업을 제창하였다.
아무튼 불트만은 구전의 형태로서 크게 세 가지 즉 이적 설화와 잠언들 그리고 예수님 말씀이 있다고 하며 예수 말씀을 다시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즉 지혜의 말씀, 예언과 묵시의 말씀, 율법, 예수 가라사대의 말씀 그리고 비유 등이다.
비신화화론 (Demythologization, 非神話化論)은 독일의 신약학자 불트만(Rudolf Bultmann)이 최초로 체계화한 신약 해석의 한 유형이다. 그의 논증에 따르면, 신약의 메시지는 종교사적으로 볼 때 신화적이라고 불리어져야 하는 시대의 원시적인 언어와 전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배경에서 쓰여 졌다.
이 사고 형태에 따르면, 마귀와 천사가 인간의 영속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모든 비정상적인 사건들이 그 초자연적인 힘들에 의하여 기인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신약의 전반에 걸쳐 널리 통용되고 있으니, 우리가 어떤 기적(예를 들면, 부활 이야기)을 다른 기적(예를 들면, 예수가 물 위를 걸은 사건)들보다 더 개인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신학은 신약의 전 메시지가 신화적인 형태로 쓰여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신화들을 일관성 있게 해석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불트만에 의하면, 이러한 해석은 가능한데, 이는 신화들이 비록 과거의 표현 형식을 받아 쓰여 졌지만 어떤 진리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인간의 실존과 그의 삶의 근거와 한계로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힘들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통찰을 묘사하고 있다.
그 통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신화적인 세계상을 벗어버릴 필요가 있는데, 그 과정을 비신화화라고 부른다. 불트만은 계속해서, 이러한 해석법이야말로 복음서 저자들의 의도에 충실한 것인데, 이는 신약 저자의 일차적 의도가 어떤 특정한 세계상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서의 어떤 깨달음으로 인도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가장 좋은 인도자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철학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은 기독교적 인간관의 세속화한 형태이며, 현대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트만의 이와 같은 제안은 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어떤 신학자는 이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분석 방법은 옳은 것으로 인정하나, 하이데거의 철학이 그 해석의 가장 좋은 도구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 실존주의적 해석방법 (實存主義的 解釋方法)
불투만은 주장하기를 비신화화의 목적인 실존의 자기 이해를 바로 하려면 전(前)이해를 가지고 신약 성경에 임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전이해란 무엇인가?
전이해란 불트만의 해석학의 첫 원리로서 성경을 해석하는 이가 그의 작업에 임할 때 원저자의 정황에 대하여 가지는 이해이다. 쉽게 말하면 저자와 해석자의 사이에 가지는 문제에 대한 공통된 삶의 관계를 말하며 여기에서 질문과 연구의 방향이 이루어지고 해석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해석학의 원리는 해석학적 궤도라고 불리는 이해의 전제이다. 불트만에 의하면 모든 역사적 이해는 이 궤도에 따라 움직인다. 이 궤도는 모든 이해는 전이해를 전제한다는 그 해석학의 제 1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해석방법의 단점은 무엇인가? 이 방법의 치명적 단점은 그것이 해석자의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해석자의 발견을 각색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실존주의적 해석이 자의적이고 독단적 함정에 빠지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3. 불트만의 신화의 개념
신화라 하면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때로는 ‘신화’라는 집합명사로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화적’ (study of myth)이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트만에 의하면 신화란 ‘신화적 서술’ (mythical talk)을 뜻한다. 따라서 비신화화란 이 신화적 서술의 제거를 의미한다. 불트만은 말하기를 신화의 참된 목적은 객관적 세계의 모습을 서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자기 이해를 설명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신화는 인류학적으로 좀 더 정확히는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트만의 신화에 정의에 대하여 우리는 세 가지 비판을 가할 수 있다.
⑴ 그 정의가 너무 널어서 모든 회화적, 우화적, 상징적, 서술들을 다 포함할 수 있다.
⑵ 난해한 모든 요소들을 다 신화라는 이름 밑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을 찾아낼 수 없다.
⑶ 불트만은 신화란 명칭 밑에 현대 과학적 표현이 아닌 모든 고대과학을 포함시킴으로서 그의 신화에 대한 정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 의 신화에 대한 정의가 옳지 않음을 깨달고 뒤에 신화란 객관화 (objetification)라고 수정 하였다.
신약성서의 신화적인 요소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하늘의 존재가 세상 속에 임재 하는 극적 이야기이다. 초대 교회는 예수의 근본적인 의의를 설명하고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독교 이전에 있었던 영지주의의 “구원자 신화”를 수용하였다. 이것은 지상에 와서 계시를 전하기 위해 인간으로 나타난 하늘의 존재에 대한 극화 적인 이야기이다. 이 신화는 기독교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둘째, 과학 이전의 우주론이다. 신약성서 저자들의 세계관은 신화적이었다. 그들은 세계가 3층, 즉 하늘과 땅과 땅 밑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땅은 인간의 자연스런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고 하늘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사는 곳, 땅 밑은 음부, 즉 고통의 장소이다. 그들은 인간의 삶과 역사의 진행은 선과 악의 초자연적 힘에 의해 지매된다고 믿었다. 땅은 “초자연적인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사탄과 악마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불트만은 그리스도의 선재성, 죽음, 부활도 신화적인 세계관에 의해 표현된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것, 즉 저 세상적인 것을 이 세상적인 것으로,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불트만은 이런 신화적인 표현이 현대인에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신화적인 개념은 신학적으로 지지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신화적인 세계관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 이전시대의 우주론이다.
불트만은 현대인이 신약성서의 케리그마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신약성서를 현대인의 과학적 세계관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성서의 비신화화이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신약성서에 대한 해석의 방법이다. 그것은 초월적인 것을 이세상의 것으로 말하는 것이며, 성서의 진리에 대한 당시의 해석을 현세의 해석으로 고치는 것이다. 케리그마를 그 신화적 윤곽으로부터 벗겨 내는 것이다. 이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제 해석해야 한다고 하였다.
불트만이 신화를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실존적 해석이다. 신약성서의 사명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 즉 인간의 실존적 자기 이해에 있다. 따라서 불트만은 케리그마가 아닌 신약성서의 신화 역시 우리의 실존을 위해 어떤의미가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신화의 본 의도는 객관적인 세계상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인간의 자기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는 우주론적으로가 아니라 마땅히 인간학적으로 또는 실존적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불트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과거의 사건이나 신화론적 사건이 아닌, 영원한 현재적 사건으로 해석했다. 현재 우리들의 삶과 결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건인 것이다. 그는 대속 적인 속죄론이나 만족 설과 같은 전통적인 해석과는 달리, 세상에 대한 심판과 인간에 대한 심판과 구원을 십자가의 영원한 의미로 간주했다. 기독교의 부활절 신앙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구원 사건, 즉 실존적 체험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매일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의 부활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실존론적 해석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보다는 오히려 그 사건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 사건의 교리 적 내용보다는 오히려 인간 실존과의 관계성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내용
1. 불트만의 인간. 역사, 종말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
불트만에 의하면 신학이란 신앙을 가지고 실존의 자기 이해에 대한 방법론적 해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인간의 현 실존과 직접 관계된 신학적 선언으로 읽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주장은 인간에 관한 것이므로 기독론은 곧 구원론이라고 했다.
첫째로, 이렇게 해서 불트만은 바울의 인간론에서 시작한다.
불트만은 인간을 소마(σϖμα)라고 하면서 그 성격을 세 가지로 분석한다.
⑴ 몸(σϖμα)이란 인간의 참된 자아에 외적으로 매달린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질이므로 인간의 몸을 가진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⑵ 인간을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그 자신과 관계를 가진 존재임을 말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⑶ 인간을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에게는 두 개의 가능성 즉 자신과의 관계를 가진 세상 안에서의 존재인 참된 실존(즉 신앙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매일의 실존인 거짓된 실존(즉 신아의 이전의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역사관인데 여기서 긴 해석을 피하고 다만 그의 자신과 초역사의 구분에 대하여만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불트만의 부정이 이 구분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불트만은 인간을 역사를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지식은 참여와 대화로 얻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트만에게 있어서 역사란 본질적으로 인간의 가능성 실제화 하는 하나의 만남인 것이다.
셋째로, 종말론에 대해여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말론 이란 전통적으로 사후의 생명 또는 세상의 마지막 일들에 대한 교리이나 불트만은 종말론의 개념을 실존주의 철학에 맞추어 전적으로 변질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일어나는 현재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불트만은 종말을 그리스도의 사건 선포에서 현재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며 참된 실존은 종말론적 실존이라고 주장한다.
2. 불트만의 구원사건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
불트만의 비신화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사건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이다.
그러면 실존주의적 구원 해석은 어떠한 것인가? 그 해석을 위해 불트만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의 철학에서 존재론적인 해석을 따른다. 무엇보다도 존재의 실재론적 구조 (the ontological structure of being)에 관하여 하이데거가 내린 실존적 분석은 신약성경이 보는 인간관을 세속적이며 철학적인 견지에서 본 것에 다를 바 없다. 역사 속에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특색을 그는 불안 (anxiety)으로 보았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영원한 긴장 속에서 존재하며, 항상 인간은 새로운 가능성에 직면한다. 인간의 구체적 자연 세계에 사로잡혀 그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여 버리든지 아니면 모든 외적인 안전을 포기하고 미래를 향하여 용감히 투신함으로 “참 사람다운 존재 (authentic life)”가 되든지 결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간관은 신약성경의 인간관과 바로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불트만에 의하면 공관복음서나 바울서신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한 곳은 없으며 하나님께 속한 자로 기록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불트만은 예수님의 두 성품 (하나님이시오, 사람이심)을 부인한다. 불트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 되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불트만은 그리스도의 사건을 떠나서는 참된 자아발견은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서 자기모순에 빠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성자로서의 위치를 부인하면서 그의 사업을 통한 유일성을 주장 한다는 것은 큰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사업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가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기 때문에 구원사업을 성취하셨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인 견해이다. 불트만은 십자가의 역사성에 대하여는 긍정하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 한다.
불트만은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만이 역사적 사건뿐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관찰에 의해 검증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활사건은 초역사속에서 지금 여기서 계속하여 말씀의 선포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순간순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평강의 체험이요, 그리스도의 충족성에 대한 깨달음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이다.
맺는 말
불트만의 신약신학은 역사비평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방법 (meaning 건설)을 통해서 실존주의 해석 (meaning 효과)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실존주의 해석을 위한 역사비평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방법이란 ‘순수 객관적 사실’ 건설을 위한 역사비평의 전제와 추구의 무의미함과 허망됨을 비평함과 동시에 또한 인간 실존과 관련된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의 재건을 위해 역사비평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트만은 무의미한 순수 객관주의적 역사비평의 탐구를 지양하고 그 대신에 역사비평의 방법을 통해 인간실존에 의미를 주는 초대교회의 실존적 삶의 정황과 그에 대한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 (kerygma)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비록 불트만이 신약을 초대교회가 공교히 만든 신앙적 산물인 ‘신화’로 여겼다 할지 라도, 불트만에게 있어서 이와 같이 건설된 ‘신앙적 메시지’는 초대교회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의 정황’에도 소망과 격려를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였다.
결국 불트만에게 있어서 신약은 오늘 우리의 실존적 문제에 해답을 주는 의미 있는 문서였고 이 신약문서로부터 그는 소위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를 재건하고자 하였다. 신약문서를 비평적 시각 (비신화화작업)을 통해 건설한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들을 체계화한 그의 이러한 신학적 재건을 불트만의 ‘신약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불트만의 ‘(비평적) 재건’과 ‘(실존적) 해석’을 통해 기술된 그의 신약신학은 신약신학의 과제가 단순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의미산출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그것은 항상 오늘 우리의 상황에 의미효과를 가져다 주 는 학문으로서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트만에게서 경각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그의 성경관으로서 그의 신약의 역사적 본질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역사적 신앙을 와 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됨을 보게 된다. 결국 신약신학은 신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터 위에서의 신약자체의 신학 (의미건설)임과 동시에 이 신학은 항상 오늘 우리에게 의미를 던져주는 살아있는 신학 (의미효과)이 되어야 한다. _ 참고문헌 : 신약총론, 신성종, 기독교문서선교회, 1981.5.1, p.29~56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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