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1. 〈마르코복음〉 공동체의 주요대중이 오클로스(οχλος)였다는 주장을 처음 편 사람은 일본의 성서학자 다가와 겐죠(田川建三)다.
2. 그는 〈마르코복음〉에서 사용된 ‘오클로스’를 특별한 사회학적 범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 복음서에서 오클로스는 세리나 매춘여성 그리고 병자처럼 촌락사회의 정상적 질서 속에 편입되지 못한 자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요컨대 그들은 ‘속하지 못함으로써 존재하는 자’를 가리킨다. ‘속함’과 ‘속하지 못함’이 나뉜다는 것은 그들을 가르는 ‘보이지 않은 장벽’이 일상의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4. (제임스강: 여기에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예수따로 오클로스 민중따로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 개인 전기보다는 예수의 유대민중운동사, 즉, 인권차별을 받는 '우리들 이야기'라는 것이다.)
5. (예수를 영원 불멸의 진리로 만들어 버린 인간들에 의해, 살아 숨쉬던 예수를 종교속으로 집어넣고, 누구도 그의 신성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교회 모든곳은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평화를 우리와 나누던 살아 숨쉬던 예수가 아닌 그저 십자가에 죽임당해 부활한 예수를 교주로 삼는 종교가 되었다. -James Kang)
6. 갈릴리 사람들을, 마가(Mark)는 유대백성인, 라오스(λαός)라 하지 않고, 갈릴리 민중이라는 의미의 오클로스(οχλος a multitude) 부르게 된 이유는, 북 이스라엘의 풍요에서 제국의 수탈로 빈곤해진 소외된 지역으로 주인의식없이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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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구신학자중에서 어느 누가 말했다 .. 라고 했다면, 일단 기가 죽었던 당시에, 다가와(田川建三 Kenzo Takawa)는 그야말로 그 시대와 사람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이 있었고 일본이나 한국에서 늘 만났던 그 민중이 이스라엘 대중과 다름없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2. 다가와의 분석에는 서구 신학적 언어 유희적 관념론이 아니라 땀과 눈물과 아우성이 있고 스스로 오류가 많고 시행착오가 많은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실제 상황에 대한 통찰이 있었습니다. 신약에 나타난 사람들은 논리적인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도 무엇을 하는 지 모르는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들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분석은 마치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공감을 주었습니다.
3. 엔도 슈사꾸도 이점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소설가이기도 한데 엔도 슈샤꾸가 소설가였다면 다가와는 학자로서 하나 하나 따져가며 서구학자들의 분석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책에서 나중 한국 민중신학자들의 특허인줄 알았던 '오클로스'가 이미 오래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황하기까지 했습니다.
4. 그는 기이하게도 기적을 믿었습니다. 예수라는 사나이의 기적을 인정했습니다! 열광 중에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신학을 목회학 박사 D.Min가 아니라 Ph. D 신약신학 쪽으로 공부했더라면 다가와(田川建三 Kenzo Takawa)와 노선은 다를 지 모르지만 그의 예리한 사회문화 현상학적 분석과 통찰을 꽤 많이 수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그러나 물론 그에게도 해방-민중신학의 '전제'가 있었기에 헛점들도 많았는데 예를 들면 당시 민중신학의 전매특허였던 단어 '오클로스'가 나중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군중들에게도 같이 쓰이는데 이 군중들은 '오클로스'가 아니라고 말하는 점 등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따랐던 군중을 '오클로스'로 쓰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군중에게도 똑같이 '오클로스'라는 단어를 같이 쓰고 있는 누가의 시각이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강은 달리 생각한다. 오클로스는 로마와 헤롯의 정치권력과 정전의 종교권력릐 수탈과 착취행위로 빈곤의 나락에 떨어져 살던 갈릴리 민중을 주로 의미하고,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를 바랬던 자들은 유대땅에 거주하던 예루살렘 헤롯성전의 종교권력을 섬기던 유대인들이었다.)
6. 어쨌든 다가와(田川建三 Kenzo Takawa)의 책은 어찌보면 지금의 나와 너무도 상이한 신학방향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를 통해 서구신학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중했습니다.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절판되었다고 하는군요. 신약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노선이 같고 틀리고를 떠나 한번쯤 읽어보아야할텐데요....
마르코복음, 예수에 대한 민중의 기억 - 가톨릭일꾼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807
초대교회 회중은 가난한 민중이었을까? - 브런치
https://brunch.co.kr/@rothem/368
<예수라는 사나이 - 역설적 반항아의 생과 사>, 다가와 겐조, 김명식 역, 한울림, 1983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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