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말 시드니인문학교실은 St. Benedicts Monastery에서 Retreat을 가졌습니다. 당시 모두
15분이 함께하여 ‘동양과 서양’이라는 주제를 놓고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비
록 금년 초에 시작한 우리들의 작은 몸부림이지만 지난 강좌들을 정리, 평가 하면서 앞으로 우리
인문학 교실에서 다루어지기를 원하시는 토픽들을 써주시기도 했습니다. 정리해 보니까 모두 34
개나 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최후의 아름다운 고종명’을 비롯
하여 안락사를 포함한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4분이나 계셨습니다. 앞으로 기
회가 되면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만 오늘은 우선 소피스트 다음엔 거의 자연
스럽게 취급하게 되는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삶과 죽음을 함께 살펴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들
을 나누어 보는 것으로 2024년 2학기 첫번째 ‘시드니 인문학 교실’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소크라테스(Sokrates 470 -399 BC)
-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 시대에 태어나서 소피스트들과 함께 살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패배한 다음 아테네가 몰락할 즈음 그의 삶을 마쳤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조각가고 어머니는 산파로서 이름은 크산티페(Xanthippe)인데 아주 못생긴데다가 악처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악처가 철학자를 만든다. 당신이 철학자가 못된 이유는, 당신의 아내가 너무 예쁘고 착해서라는 농담이 있다). 저서는 없습니다.
그의 제자 중 하나인 플라톤이 Apology of Sokrates, Paedon, Symposium 등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록’들을 기록하여 전해 줌으로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 삶과 죽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소크라테스가 되게 한 사람은 그의 제자 플라톤입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저서가 없습니다. 예수나 석가에게도 자신이 직접 쓴 저서는 없습니다. 책은 별로 잘나지 못한 사람들이 쓰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없었다면 소크라테스는 당연히 없었을 것 입니다.
제자가 위대해지고 뛰어나야 스승이 빛을 보게 됩니다. 특히 종교, 철학, 예술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가 없었어도 예수가 있었을까요? 기독교는 예수가 만든 종교일까요? 아니면 바울과 베드로가 만든 종교 일까요?
⚫ 소크라테스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페르시아 전쟁 이후 지중해에서 벌어진 가장 큰 전쟁은 기원전 431년 부터 404년 까지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입니다. 이는 도시국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서 28년 간이나 계속된 전쟁입니다.
이 싸움은 에게 바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어느 도시 국가가 주도권을 차지 할 것인가를 놓고 겨룬 세력 싸움이었습니다. 3차에 걸친 해전과 육지전을 거듭하다가 마침내는 아테네의 모든 함대가 전멸되고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이기고 아테네가 패배했다는 것은 아테네를 중심한 한 시대의 민주정치는 막을 내리고 스파르타식의 과두정치 체제가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형태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은 규제되고 역사가 뒷걸음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스파르타식의 통제되고 획일화된 교육과 훈련이 개인을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Spartan Education: 스파르타식 교육 – 흔히 그리스 말로 ‘아고게’ Agoge라고 부르는 이 집단적 전투 중심의 교육은 7살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전장에 나가는 아들에게 방패를 건네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방패를 들고 걸어서 돌아오거니 아니면 이 방패 위에 누워서 돌아오너라’ 혹독하고 무자비한 훈련, 전장에서의 명예로운 죽음, 끝없는 극기와의 싸움등은 나치 독일이나 일본군인들의 가미가제 정신이나 북한 인민군대에게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통일된 하나의 교육과 한국에서의 국정 교과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참고: 지난 역사에서 우리가 경험한 다양한 정치 형태에 대한 이해
(1)독재정치(獨裁政治) Autocracy - 한 사람에게 일체의 정치권력이 집중된 형태, 오늘날의 북한과 같은 형태.
(2)참주정 (僭主政) Tyrant 이란 영어에서 보듯이 독재정치인데 일반적인 왕정체제가 아니라 군주의 자리를 찬탈하여 정권을 장악한 왕정이나 독재정치 체제, 이성계식의 조선 왕조나 박정희, 전두환식의 군사독재.
(3)군주정치(君主政治) Monarchy 는 왕정체제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절대 왕정체제로써 ‘짐이 곧 나라요 법’인 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입헌 군주제로써 왕이 있기는 하지만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제한된 권력만 행사하는 체제입니다.
(4)과두정치(寡頭政治) Oligarchy –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소수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갖고 그들의
가문이나 친구들에게 권력을 승계하면서 통치하는 체제. 중국공산당을 비롯하여 현대의 많은 정당,
회사, 재벌 관료사회도 일종의 과두정치 체제라고 할 수있습니다.
(5)철인정치(哲人政治) 플라톤이 Politeia에서 그린 이상적 국가통치체제로 이데아를 지닌
철학자가 지배하는 정치체제를 말합니다.
(6)귀족정치(貴族政治) Aristocracy 혈통, 문벌, 소유에 있어서 특권이 주어진
귀족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정치체제입니다.
(7) 민주정치(民主政治) Democracy – 여기에는 직접민주주의 정치체제와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사상
– 앞에서 본 대로 소크라테스는 두가지 면에서 극심한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를 살아갔습니다.
첫째는 소피스트들들의 상대주의, 허무주의가 절정에 올라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옳바른 삶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가치관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형성되지 못한 정신적 혼란기였습니다.
삶의 목표와 방법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허둥대던 시대였습니다.
둘째는 정치-사회적으로도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였습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이어지던 시대, 그러다가 마침내는 패전국이 된 아테네에서 사람들은
정치적 자유를 상실하고 오랜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고통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모두 다 힘들 때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총체적 위기 속에서 방황하던 민중들과 젊은이들에게 옳바른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의 교사’로 출발했습니다. 그는 어떤 철학적 학파나 학교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아테네의 정신적 선생님으로 ‘진리의 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첫째 핵심은 ‘인간’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 철학자들이 갖었던 최대의 관심은 우주와 만물의 본질, 근본, Arche였습니다. ‘우주 만물은 무엇으로 되어있는가?’ - 그런데 이런 질문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다시 물었습니다. ‘우주 만물의 아르케를 묻는 너, 너 자신은 도대체 무엇이냐?’ 그는 철학의 핵심 주제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라는 것도 구체적인 한 인간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으로 정리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Know Yourself’ – gnothi seauton – 이것이 소크라테스 철학의 제 1 주제입니다.
둘째로,소크라테스 철학은 ‘우리는 어떻게하면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면서 살 수 있을까?’ 에 있었습니다. .
이는 당시 소피스트들이 인간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상대주의, 허무주의에 밀어넣으면서
말만하고 실천은 없는 지식의 장삿꾼들이 되고만 것에 대한 반성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관념적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적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나아가야할 방향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도덕적이고 옳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반성하는 삶’ 끊임없이 ‘생각하는 삶’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성찰하는 인생’을 살아야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반성’ ‘생각’ ‘성찰’이 옳바른 삶을 위한 기초라고 본 것입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성찰하고 자신을 반성하라’ ‘생각하지 않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
그 다음 여기에 연이어서 소크라테스가 제기한 문제는 ‘그렇다면 앎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성찰과 반성은 ‘자기를 알기 위해서’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목표는 어디까지나 ‘앎’입니다. 인간을 알아야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진리를 알아야지 진리를 따라가게 되고,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고, 정의란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정의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주장입니다. ‘나는 무지하게 살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 – Arete –는 ‘앎’ ‘지식’ ‘인식’이었습니다.
‘무지는 악이다. 지식은 선이다. 모든 악과 악한 행동은 무지에서 나온다.
정의롭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정의란 무엇인지를 알아야한다’
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 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 정의, 진리, 양심, 믿음, 희망, 정치, 민주, 평등, 등등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 할 것인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는 묻습니다. ‘최고의 앎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을 알아야지 그는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되는가?’ 그의 대답은 ‘무지에 대한 앎’입니다. 인생이란 나이가 더해지고 덕과 지식이 높아지고 생각과 반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입니다.
결국 ‘무식에 대한 지식’ ‘무지에 대한 인식’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는 존재가 되게한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신이여 이 세상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때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소크라테스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자신이 정말로 무지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크라테스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 한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 ‘I know only one thing that is that I know nothing’
–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인간이란 그가 지닌 지식 때문에 현명해 지는 것이 아니라
무지 때문에, 혹은 무지에 대한 지식 때문에 현명해 진다>는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방법론을 흔히 ‘대화법’이라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끊임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정의란 무엇입니까?’ ‘진리란 무엇입니까?’ ‘신은 어떤 사람을 사랑합니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그것 만일까요?’ ‘가능 할까요?’ ‘그래서요?’ ‘그 다음은요?’ ‘또 뭐가 있지요?’ 하면서 계속하여 질문에 질문을 이어 갑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상대방은 마침내 ‘잘 모르겠습니다’ 하면서 자신의 무지, 혹은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들에게서 ‘무지의 고백’을 들을 때까지 계속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마침내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마치 종교에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처럼 소중히 여겼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이 ‘대화법’을 흔히 ‘지적산파술(知的 産婆術)’ 이라고 합니다.
계속되는 반어법(反語法)을 이용하여 독단과 선입견과 무지를 깨우치는 이런 지적산파술은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산파였던 데서 깨우친 것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정의롭게 행동하가 위해서는 먼저 정의란 무엇인지를 알아야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정의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에게 그렇게 할려고 하는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실은 사랑이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를 모르면서도 스스로 그걸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 철학의 종착점은 지행합일(知行合一)에 있습니다.
그는 온전한 지식은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선을 아는 것은 선하게 사는 것을 통해서 증명된다’ ‘사랑
이란 사랑하는 삶 속에서 나타난다’ 소크라테스는 지(知)와 행(行)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 했습니다. 지와 행은 동전의 양면이고 손바닥의 양면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성서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진실로 그의 철학대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죽음이 그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가장 좋은 주석이 될 때 그는 진정한 철인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죽음 – 일본 철학계의 영향이라고 합니다만 흔히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세계 4대
성인중 하나로 여깁니다. 예수, 석가, 공자와 함께 소크라테스를 동급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이
상한 것은 다른 세분은 모두 한 종교의 창시자들인데 소크라테스는 아무 종교도 세운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각도에서 보자면 성인의 반열에 든다는 것이 좀 의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소
크라테스가 세계 4대 성인 중 한분으로 취급된 것은 그의 철학적 사상이나 위치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 마치 하나의 종교인과 흡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마치 종교적 순교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물론 예수의 죽음과 흡사하게 소크라테스의 역시 ‘정치적 죽음’입니다. 그는 무신론자도 아니었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혹세무민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사람도 이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영혼의 실재를 믿었고 저 세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만 사회적 주류 세력에게 패배했을 뿐입니다. 이미 괴변가들로 변모된 소피스트들과 대립했고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의 새로운 정치 세력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기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향하여 무신론자요, 사회적 선동가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를 고소한 사람들과 그들과 한 통속이 된 500여명의 배심원들에 의하여 유죄판결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점은 바로 그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 (The Apology of Socrates)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미나리로 만든 독약을 마신 후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그의 마지막을 마무리합니다. 줄이고 다듬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슬픔과 비극, 재앙과 고통이라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첫째로 죽음이란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우리 영혼이 벗어나 참되고 영원한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즐거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음을 통하여 無의 세계로 들아가게 되면 거기에서는 일체의 육체적 욕망이나 감각적 유혹이 우리를 지배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사슬들과 더러운 것들, 곧 육신의 온갖 죄성과 한계로 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육체의 감옥으로 부터 벗어나는 영혼의 해방입니다.
둘째로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우리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기쁨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여행길이라고 본다면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 것이되겠습니까? 생전에 만났던 좋은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과 영혼의 자유와 악으로 부터의 해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 세상으로 가는 이 죽음의 여행길은 우리 모두가 희열을 갖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나를 고소하고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자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들은 살러 갑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누가 더 좋은 것을 만나게 될지는 오직 신만이 아십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옆에 있던 제자 크리톤에게 이런 말을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오 크리톤이여! 전에 내가 여행 중에 아이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마리를 그냥 얻어먹은게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꼭 내대신 갚아주게’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선고된 유죄 판결과 사형선고를 순수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는 아테네로 부터 추방당할 선택권도 받았지만 이를 단호하게 거절 합니다. 그는 안정되고 묵인된 도피를 할 수 있었지만 당당하게 사약을 받았습니다. 그는 ‘악법도 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철학을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인간의 선함과 진리의 승리를 확신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함께 생각을 나누며 토의할 점들 – 끝까지 죽음을 피하려고 했던 예수와 의연하게 죽
음을 받아드렸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비교해보고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왜 다른지를 이야
기해보자. 헬라의 영혼 불멸론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은자의 부활에는 어떤 차이가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왜 다기해보자
인가, 사고사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세상에는 정말로 끔찍한 형태의 살인이 있습니다. 요즘은 갈
수록 세상이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친부모가 자기 자식을 죽이고 자식들이 친부모를 죽이는 일들
이 비일비재 합니다. 살인의 방법도 잔인무도의 극치를 달립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지나치게 행사
되고 있습니다. 또 국가는 소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인 살인이라 할 수 있는 사형을 시
킵니다. 고문, 폭력, 치사를 포함하여 전쟁을 하는 것도 사실은 모두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살인
을 하는 것이요, 따라서 타살이며 외인사에 속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적 신념과 사상 때문에 죽는 것,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죽는 것, 물질과 명예 때문에 죽는 것
들은 여기에서 언급하질 못했습니다만 정말 사람이란 사는 모습이 다른 것 처럼 죽는 것 또한 여
러가지 입니다.
⚫ 저는 호주에서 목회하는 동안 모두 55번의 장례식을 집례했습니다. 그중에서 자연사라고 할 수
있는 경우(83세 이상이 되셔서 돌아가신 분들)는 12분이고, 병사로 가신 분들이 28분, 그리고 나
머지 15분은 여러가지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2015년 말로 세계인구는 약 73억 입니다. 1년에 출생하는 신생아는 약 4천 7백만 입니다. 1년에
죽는 사람은 약 2천만이 조금 더 됩니다. 어림잡아 해마다 한국 인구만큼 새아기들이 태어나고
또 호주 인구만큼 죽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호주에서는 약 15만 4천명이 죽었습니다.
호주 전역에서는 1주일에 평균 약 3천 건의 장례식이 거행됩니다. 통계에 의하면 6,7,8,월, 겨울
철 석달 동안 전체 사망자의 약 50%가 죽습니다.
⚫ 다음은 ‘호주의 장례 안내서’(이문철 엮음)에 제가 기고했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봄이 있으면 가을이 있고, 여름이 오면 겨울도 오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출생이 있으면 죽음도
오고 삶의 기쁨이 있으면 죽음의 슬픔도 있게 마련입니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자연의 순리
요, 자연계의 질서 중 하나 입니다. 삶과 죽음이 피차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것이냐, 아니면 일직
선으로 흘러가는 일회적인 것이냐 하는 데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삶과 죽음 그
자체는 어느 누구도 피하거나 거역 할 수 없는 창조주의 섭리요, 자연의 법칙입니다.
사실 죽음이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식물계에도 싹이트고, 자라고, 꽃이 만발하고,
또 다시 잎이 지고, 말라지는 출생과 성장과 멸종이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말 할 필요도 없습
니다. 모든 산 것은 죽을 때가 있고, 모든 태어난 것은 사라질 때가 오게 마련입니다. 죽음이란
인간계를 포함한 생물과 무생물계 전체의 우주적이며 보편적 현상입니다.
죽음은 빈부와 유무식을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
습니다. 죽음이란 지극히 우발적인 것 같이 보이고, 갑작스런 이변인 것 같이 생각하지만, 사실은
예측 가능한 것이며, 준비하도록 예고된 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그가 유신론자냐, 무
신론자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종교적 신앙의 유무나, 신앙 형태의 다양성과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
다. 죽음이란 그냥 생물학적 현상이요, 자연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음을 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종교에서는 죽음을 저 세상
에서의 탄생이라고 가르칩니다. 죽음은 참된 안식이요, 휴식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철학자들 가운
데는 죽음을 영과 육의 분리라고 이해 하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의 감옥에
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죽음이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인간이 진정한 자기를 찾아나서는 출발역이라고 보았습니다. 하기야 우리는 이
미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종착역이란 늘 시발역이고, 시발역은 또한 종착역이 된다는 것
을 말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시도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기물에서 무기
물로의 전환 이라고도 말하고, 뇌활동이 정지된 상태니, 심장의 박동이 멈춘 상태니 등등 여러가
지 의학적, 생물학적, 과학적 해석들이 분분 합니다. 그 중에는 아직도 진행 중인 논쟁적 이론들
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물학적, 자연적 현상이라고 해서 꼭 그런 각도에서만 볼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정적
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 종교적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학이나 생물학에서는
죽음을 삶의 종결이라고 보지만, 대부분의 전통 문화나 종교인들은 죽음을 영원으로의 회귀로 봅
니다. 조상에게로 돌아가든지, 신에게로 돌아가든지, 죽음이란 돌아가는 것이지, 소멸되어 없어지
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명활동이 정지됨으로 다시 회복이 불가능한 자리에 이르게되면 사람들은 일
단 <죽었다>고 말합니다. 심장의 박동이나 호흡이 영구히 중단되고, 뇌의 기능이 회복될 가능성
이 전혀 없는 상태에 이르러, 기관과 세포와 조직이 완전 정지하게 된 것이 바로 생물학적 죽음
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신체의 기관과 조직들을 다른 개체로 이식하는 의학적 기술이 크게 향상
되었습니다. 심장, 뇌, 신체의 각 기관들, 줄기세포 등을 다른 이들에게 이식하여 부분적으로 나
의 존재를 보존해 나가고, 또 계속적으로 활동하게 함으로 죽음의 정의가 많이 모호해지게 되었
습니다. 죽음에 대한 전통적 이해와 해석과 태도가 쉬임없이 변화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사망학’(Thanatology)은 죽음에 대한 학문적 연구로써, 과학적, 심리학적, 종교적,
사회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여, 죽음을 분석하고, 죽음을 준비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설명과 이해와 접근이 한결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사실입
니다. 사람마다 생사관은 디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생사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다 죽습니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그래도 죽습니다. 장기는 이식 되지만 그래도 죽음은 죽
음일 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해석은 변하고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문화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인간은 다 죽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개인적으로 경험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간접 경험을
할 뿐이지, 내가 직접 경험을 하거나 실험을 해 볼 수는 없습니다. 죽음이란 유일회적 사건입니다.
임상실험을 해 볼 수 없는 유일한 분야가 바로 죽음입니다. 보통 동물 실험을 한 다음에는 인
실험을 해 보는 것이 순서인데 사람에게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여전히 신
비요,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죽음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이유
도, 바로 직접 죽어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은 후에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육신은 죽어 자연으
로 회귀하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은 오랫동안 남습니다. 그러므로 살
아있을 때, 잘 사는 것이 사실은 잘 죽는 것입니다. 죽음의 준비란 <지금, 여기에서> Here and
Now, 하루 하루 사는 삶의 내용이 결정해 줍니다. 요즘은 호스피스 운동을 포함하여 이 곳 저
곳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학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단순히 묘
지를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아닙니다. 매장, 화장, 수장, 암장, 수목장, 동굴장 등등 장례법이나
절차에 대해서 생각해 두거나 유언을 작성해 두거나 비문을 미리 써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하
루의 삶을 반성하고 여생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뜻있고 바르게 살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바른 태도입니다. 죽음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는 오늘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 입니
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할아버지 처럼, 아직 살아있을 때 사
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장례식 까지도 미리 치뤄두는 여유있는 삶, 생각하는 인생, 그리고
무엇 보다도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감사하면서 사는 삶,
- 이것이 죽음에 대한 가장 확실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 백살 가까이 된 할머니에게 좀 큰 돈이 생겼습니다. ‘할머니 그 돈 어디다 쓰시겠어요?’ 누군가
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모았다가 늙으면 노후 자금으로 써야지” 우습게
들리는 말이지만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노 요코가 쓴 ‘죽는 게 뭐라고’에 나오는 이야
기입니다. 죽을 때까지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가 죽고싶다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날이 여
위어가는 모습이었지만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점점 늙어가는 그의 모
습이 안타깝고 또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직도 여전히 무대로 올라갑니다. 연극을
위해서도 아니고 관객들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 다음은 지난 해 읽은 아툴 가완디(Atul Gawnade)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에
서 옮겨온 저의 잡기장입니다. 간혹 저의 개인적 생각도 함께 섞어 놓았습니다.
의대생들과 의대 교수들은 ‘의대의 교육 목표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꺼져가는 생명의 불길을 살려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꺼져가는 생명
이 그냥 잘 꺼지도록 돌보는 것도 가르쳐야한다. /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잠간 아플
뿐이예요 치료 받으면 곧 좋아질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은 의료인들의 대표적인 거짓과 기만이
다. / 의사의 기본적 책임은 정직과 친절이다. 의사들은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
고 있으면서도 용기, 진실, 그리고 지혜롭게 말할 줄을 모른다. / 의료인들은 겸손해야한다. 모든
인간은 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을 대해야한다. / 의사들은 수술만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
시드니 인문학교실 Repeat 홍길복의 열한번째 강의: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이야기(존엄한
죽음, Well Dying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01/08/2024
라 말하는 데도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말하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기술이 있는데 그것은 환자의 말을 알아듣는 기술이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이해가 않되고 이
해가 않되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나는 내가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을 때
나의 건강문제 의사결정 대리인을 지명한다. 홍현철, 홍지은, 홍지혜, 세사람이다. / 이 수술, 혹은
이 치료를 받은 후에도 1)나는 하루 커피 한잔과 와인 한잔을 마실 수 있는가? 2 )나는 가끔 냉면
을 먹을 수 있는가? 3) 나는 TV에서 골프 중계방송을 볼 수 있는가? 4) 나는 바하의 브란덴부르
크 협주곡 제 3번이나 베토벤의 교향곡 제 9번을 들을수 있는가? 5)나는 하루 한 두 시간은 성경
이나 다른 독서를 할 수 있는가? 6)나는 하루 한 30분 정도는 밖에서 걸을 수 있는가? 위의 질
문에 대해서 의사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럼 수술을 해라, 항암치료를 하라고 허락할 것이다.
/ 의사는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질병만 치료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
결 되는 것이 아니다. /1945년 이전 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사람들은 거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 했
다. / 인간이란 태어나는 순간 부터 죽음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 미국 의료계에서는 다음 8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혼자 할 수 없게 되면 그는 독립적으로 살수 없다고 판정하여 요양원에 가도록
추천한다. 1. 화장실가기, 밥먹기, 옷입기, 목욕하기, 머리 손질하기 등을 혼자서 못 할 때 2. 침대
에서 혼자 일어나지 못 할 때 3. 의자에서 혼자 일어나지 못 할 때 4. 걸을 때 부축을 받게 될
경우 5. 혼자서 쇼핑을 못가거나 계산을 못 할 때 6. 혼자서 음식을 못 해 먹을 때 7. 빨래, 청소,
전화 하거나 받는 일, 약 먹는 것을 잘 못 할 때 8. 외출을 혼자 못하거나 돈 관리를 스스로 못
할 때 / 지난 세기 이전 까지는 사람들이 자기 나이를 보태서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든 척
하는 ‘반올림 나이’ age heaping 현상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자기 나이를 깍아서 말하려고 한다. /
예전에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저런 일들은 주로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구글을 검색한다. 그리고 구글 검색하는 방법은 다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 미국에서
retirement village, retirement community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하고 세워나간 사람은 부동
산업자 Dell Webb이다. 의사나 정부나 social service를 하는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아니다. / 현대의 nursing home system은 노령에 든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병실 사용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고안해 낸 것이다. / 평균 미국에서는 죽기전 1년 정도는
요양원에 있다가 숨을 거둔다. / 군대의 훈련소, 고아원, 정신병원, 감옥, 그리고 요양원은 공통점
이 있다. 모두 다 당국에 의해서 식사, 취침, 기상, 운동 등이 계획되고 통제되고 강요된다. / 요양
원의 목표는 노인들의 삶을 가치있게 살도록 돕는 것이 아니다. 관계와 기쁨을 얻게해 주는 곳이
아니다. 요양원의 목표는 노인들을 간호해 주고 보살피는 정도이지 그 이상을 기대하면 않된다. /
몰 이해는 잔인함과 같은 것이다. / 양로원에서는 옷을 입혀주는 것이 스스로 입는 것 보다 더 쉽
고 빠르고 시간도 절약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노인들의 옷도 입혀주고 세
수도 시켜주고 신발도 신겨준다. 그것은 직원들이 친절해서가 아니라 그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
이다. 노인들은 아무리 늙고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자기가 옷도 입고 씻고 걸어보려고 한
다. 노인들은 헝겁인형이 아니잖은가! / 요양원의 모든 시설은 오직 1) 안전, 2) 위생, 그 둘에만
촛점을 두고 운영한다. 여기는 근본적으로 노인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노인들을 이 곳에 맞긴 고
객인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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