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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 L'Arlésienne (suite No.1, No.2) <아를의 여인> 중 제2 미뉴에트.

Narin Pusil 2021. 8. 7. 12:34

ㅡ김현철CP conducting performer

 

https://youtu.be/eNv1FQ0CcYg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가 알퐁스 도데가 각본을 쓴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한 부수음악으로, 원곡은 성악을 포함한 27개의 곡으로 구성되었으나, 나중에 대규모 정규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것이 아를의 여인 모음곡 1번, 2번이다. 비제 자신은 제1모음곡을, 비제 사후에 에르네스트 귀로가 제2모음곡을 완성한 것이 지금의 아를의 여인이다.

 

 

https://youtu.be/IPo06ZBb3FY

 

제2 미뉴에트

E플랫 장조, 안단티노 콰시 알레그레토, 3/4박자로 원래 이 곡은 부수음악에 없던 것인데 비제 사후에 기로가 비제의 다른 오페라 '아름다운 페르트의 아가씨'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프의 반주 위에 플루트가 애잔하게 연주되며, 매우 아름답다. 기로는 당시 사람들이 '미뉴에트는 좀 신나지 않아야 하나?'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아니, 여주인공은 전혀 안보이고 남주인공이 자살하는 판국에 신나는 것이 어딨나?'라고 말했다.

 

 

조르주 비제(프랑스어: Georges Bizet, 1838~1875)

프랑스의 작곡가로서, 대표작으로 《카르멘》이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Georges 라 불리고,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알렉산드르 세자르 레오폴(Alexandre César Léopold)이라는 본명이 따로 있었다. 비제는 1838년 파리 근교의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악 강사인 아버지에게서 음악 교습을 받은 비제는 일찍 재능을 보여 10살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파리음악원에서 작곡, 피아노, 오르간을 배운 그는 주로 샤를 구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56년 18세의 비제는 로마대상 작곡 콩쿠르에 칸타타 '다윗'을 출품해 입상, 이듬해에는 마침내 대상을 차지한다. 부상으로 로마에 3년 동안 장학생으로 유학을 갔다온 후, 비제는 오페라에 주력한다.1863년 '진주조개잡이'로 오페라 작곡가로서 첫 이름을 알린 후, 계속해서 작곡에 몰두하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1869년 로마 유학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로마의 회상' 모음곡을 발표하였고, 같은해 스승의 딸과 결혼한다.   교향곡 같은 장르보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성공하기 갈망하는 그로서 하필이면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바그너와 베르디의 시대에 살았던 탓인지, 상당수의 작곡물들이 두 작곡가의 아류라고 평가절하 되는 상황이 빈번했다고 한다. 때문에 떨어지는 자존감으로 폭음을 일삼는 등 건강을 좀먹는 행동을 일삼곤 했다.

 

1872년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각색한 '아를의 여인'의 극음악을 작곡해 성공하고 그중 몇곡을 모아 모음곡으로 발표한다. 하지만 그의 일생일대의 걸작은 1875년에야 나온다. 바로 카르멘. 비제는 이 오페라에 엄청난 기대를 걸었으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될 때의 반응은.. 또 바그너와 베르디에 밀려  망했다. 결국 건강이 안 좋은 상황에서 초연 실패로 결정적인 타격을 맞은 그는 카르멘이 빈에서 대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 채 초연으로부터 3개월 뒤인 1875년 6월 3일에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불과 향년 37세였다.

 

 

https://cafe.daum.net/bgtopia/NkwY/824?svc=cafeapi

 

"아를르의 여인"

■ L'Arlésienne suite 1. No.2 제2미뉴에트 E플랫 장조, 안단티노 콰시 알레그레토, 3/4박자 2. 원래 이 곡은 부수음악에 없던 것인데 비제 사후에 기로가 비제의 다른 오페라 '아름다운 페르트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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