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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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 거리낌이 없는 자만 먹고 마시라구요??

Narin Pusil 2021. 6. 27. 13:45

거리낌이 없는 자만 먹고 마시라 ??

*없이 살던 가난한 동포들과 음식을 서로 나누던 당시 시대적 상황 .. 그 공동체가 커져감에 따라 .. 의식화, 제도화 되어 성찬식으로 나타났다. 그것 역시 역사적, 사회적 변천들에 하나인 것이다.

 

1.  교회에서 보통 성찬식을 할 때 목사가 엄숙하게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을 살피고 거리낌이 없는 자만 먹어라.”라고 낭독하는 구절에 마음이 꺼림직해서 필자 역시 받지않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죄 지은 자는 먹지 말라는 뜻으로 사람 겁주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2.  초대교회가 의례 그랬듯이 고린도 교회는 매일 저녁 만나 음식을 나누며 서로간에 소통의 시간을 가졌읍니다. 훗날 그것을 소위 성도의 교제라고 불렀는데, 그 모임은 저녁 식사로부터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각자가 가지고 온 것을 다함께 풀어놓고 먹다가 계속적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나중에는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을 각자가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가난한 사람은 먹지 못하는 일도 벌어지게 되었다.

 

3.  시계가 없던 시절에 회중이 모이는 시간은 일정할 수가 없었다. 어쨋든 하루의 일을 끝내는 대로 모여 오는 대로 식사를 하고 모일 때까지 포도주도 한 잔씩 하면서 떠들다가 찬송(?)도 부르고 밤이 늦어서야 “자, 주님의 피를 돌립시다.”하고 포도주를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 때는 주량이 약한 혹은 과음한 친구들이 술주정도 하기도 했을 것이고, 깽판치는 자들도 있어서 거룩해야 할 성찬의 자리가 문란해져 버렸던 것이죠

 

4.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기가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 살펴보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예식에 참여하라고 권한 것이라고 사료 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요즘처럼 사람 겁주는 문구가 된 것은 바른 깨달음이 없는 해석이 오히려 정통이 되어 버린 좋은 예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술이 말썽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의 피만을 사모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신학교 수업 시간에 졸았는지 아니면 결강했는지 그 내력을 모르는 목사들도 의외로 많더군요.  혹시 주님의(?) 교회를번성 시키는데 도움이 안되서? .. 아니면 권위 따문에 .......

 

 

 

일용할 양식인, 팔레스타인의 빵과 포도주는, 조선의 밥과 숭늉이다.

                                                            /////////////////////////////////////////////////

 

 

 

◎누리나래 08.07.23. 07:41

 

거룩함이라는 위선의 틀을 만들어 인간이 지닌 두려움에 대한 환각을 덧씌우고 있지요.

그것을 통해서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방법으로 자리를 잡았지요.

그냥 함께 나눈 마지막 조촐한 회식을 거룩이라는 미명하에 마지막 만찬이라는 허명과 함께

그 안에서 숨막히는 억압의 전통을 이용하지요.

떡과 잔은 예수의 삶과 죽음을 기리며 그와 같은 삶과 죽음을 되새기며

현실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길 바랄뿐입니다.

 

 

강경수 08.07.23. 08:11

 

1. 아마 예루살렘 교회의 관행을 어느 정도 드러낼 듯한, 사도행전 2:42~47을 읽어 보세요.

(42 : They were continually devoting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fellowship, to the breaking of bread and to prayer.) 

거기에는 '성찬식' 발상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저 "빵을 떼어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는", 어느 유대교 종파의 '공동 식사' 관행이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또 '포도주'가 언급되지 않으므로, "예수의 피"라는 상징도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요컨대, '성찬식' 전례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2. 코린토 1서 10장~11장을 자세히 정독해 보면, 필자의 논지가 왔다갔다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뒷날의 삽입(interpolations)이 웬만큼 들어가 있을 듯. 의심스러운 대목은, 세 군데입니다.

     (1) 10:23~11:1은, 바로 앞의 '꾸짖는 논조'에서부터 '타협적 논조'로 바뀝니다.   

     (2) 11:2~16에는 느닷없이 '여자 머리의 베일' 사안으로 옮겨가는데, 앞뒤 문맥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3) 가장 중요한 대목은 11:23~28의 '주님의 만찬' 대목인데, 그 앞의 논의와는 달리 지나치게 '전례적'(liturgical)입니다.

          또 이 '주님의 만찬' 장면은, 바울 서한집과 마르코 복음서가 겹치는 거의 유일한 대목인데, 그 점도 의심스럽습니다.

 

            ①코린토 1서 11:23~28 '주님의 만찬' 부분이 바울의 문장이든 뒷날의 삽입대목이든 간에,

                     '성찬식' 전례는 교회의 발전과정 중에 '공동 식사' 관행으로부터

                     '예수의 살과 피로 상징화시킨 의례'로 바뀌었다... 는 게 요점입니다.

            ②또한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발상은, 결코 <유대적>일 수가 없고,

                    분명히 밀의종파(mystery cults)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과연 이게 바울의 창안일까? 저 개인적으로는 '아닐 것이다'라고 추측합니다.

 

3. 코린토 1서 11:29은, 표준새번역이 잘 번역되어 있군요.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은 그냥 "몸"으로 되어 있고, 이후의 사본들은 "주님의 몸"으로 고쳐져 있어요. 여기에서 <주님의>는 뒷날의 필사자들이 (11:23~28의 삽입대목에 맞춰) 집어넣은 구절일 듯. 원 필자는 '신자 (자신)들의 <몸>'을 가리켰을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For he who eats and drinks, eats and drinks judgment to himself if he does not judge the body rightly. -NASB

 

*로마제국과 유대왕국 특히 헤롯성전의 권력들에 수탈과 착취를 당해 빈곤한 계층으로 전락한 갈릴리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에 예수는 분노를 나타냈다. "있는 사람들이 내어놓은 음식을 서로 나누자."

 

 

BigMouth 08.07.23. 11:05

 

1. 성찬식과 같은 것을 종교적 의례로 만들어 후대에 정립한 것은...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종교화>의 전형적인 과정. 종교화가 어떤 장점과 폐단을 갖는지도 일반적인 상식일테고... 굳이 기원의 정확성을 논하기보다는 회복되어야할 의미를 잘 정리해야겠습니다. 기독교에서 성찬식이라는 그릇에 담긴 원래의 본뜻이 잘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종교예식에서 뭘 어떻게 분별해야하는지... 상식적인 일입니다. 종교 집단의 특정한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이 그 예식에 <부여한 의미>에 대한 동의가 최소한 필요하다는 요구는 당연해 보입니다. <성찬식의 기원>이 무엇인가가 중요하기 보다는... <성찬식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오늘날의 의미가 어떤 쓸만한 것이 있는지를 논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3. 모든 종교에서는 교주의 뜻에 동참하겠다는 서약을 표시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마련하지만... 기독교는 그 서약을 세(침)례로 표시하고, 또 성찬을 통해 구체적으로 반복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보입니다. 교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방식은 다른 종교에서도 자주 보이는 <집단의식>이므로... 자주 반복한다는 것 외에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무엇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주가 (나를 포함한) 인류를 위해서 살과 피를 바쳤다는 선언에 따라... (1) (내가) 그 덕을 입었다는 인정과 감사의 표시이고, (2) 그렇게 살과 피를 다른 사람을 위해 바치겠다는 결단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4. 기독교인으로서 그런 <신앙적 결단>이 없이 단지 형식에만 참여하면... 일종의 (자신과 타인에게) <기만적 행위>가 된다는 측면에서... 성찬 참여자들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문제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성찬을 집례하는 이 조차도)이... 그런 의미에 대한 느낌이 없는 경우인데... 종교가 <화석화>되는 현상일 겁니다. 캐톨릭 미사에서도 <내탓이오~>을 반복하는 멋진 순서가 화석화되었다가... 한때 되살리려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었습니다만... 말그대로 한때...에 그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 예전의 본의가 잘 회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