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누가복음 이야기

누가복음 - 사도행전(조지 쉴링턴),Book Review

Narin Pusil 2020. 2. 3. 15:30

 

누가복음-사도행전 개론(Book Review : 제임스강)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Luck –Acts    (번역:  왕인성 부산장신대 교수)          

 

 

 

1.     저자 : 조지 쉴링턴 (V. George shillinton)

   = 침례교인으로,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 ( Canadian Mennonite University)  성경신학 교수로, “예수의 비유담론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Jesus and his Parables: Interpreting the Parable of Jesus Today)   “기독교가 탄생되기 이전에 예수와 바울의 세계관과 사역에 대한 회고(Jesus and Paul before Christianity: The World and Work in Retrospect)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2.     독특한 구성

 

제목과 같이   책은,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내용으로 쓰인 것으로누가복음-사도행전 연구를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읽어 나가면서 스스로가 방법을 체득할  있도록 하는 스터디를 위한 가이드북이다.   목차에서 보여주듯이누가복음-사도행전의 역사적 탐구와 그에대한 비평적 접근에서 시작하여,  사회과학적 접근뿐 아니라수사학적 방법론과  문학비평과 내러티브 비평 방법론,  그리고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실행 등에 이르기 까지  21세기 최신의 해석적 사고들이 누가복음-사도행전의 핵심 본문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누가복음사도행전 개론> 통해 ‘조지 쉴링턴  착실히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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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저자 서문 / 역자 서문
1. 
누가복음 - 사도행전 : 하늘에서 내려다  조망   

2. 역사적 탐구 구성기록배경저술 의도
3. 
역사적 탐구 : 본문 안에 존재하는 사건들과 사람     

4. 사회 과학적 시나리오들 : 사람들은 어디에서 생각하고 사는가?
5. 
사회 수사학 조직 :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  

 6. 내러티브 강화 : 기독교 공동체 안의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
7. 
탈식민주주의적 충돌 : 선교적 자세와 활동      

8. 페미니스트적 실행 : '남성과 여성 그리고 모두
9. 
신학적 상호 교환 : '서로에게 말하기'   /  참고문헌

 

  

3.     본문구성과  문헌의 저자

 

·         쉴링턴의 사고에 전적으로는 동감하지는 않지만비교적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누가문헌을 이해하려는 그의 사고에 경의를 표한다 책의 제목에  An Introduction An 붙힌것처럼,  핵심본문의 다른읽기의 모형을 적용하는 모습으로  서로 그리고  다른 사고속에서의 다양한 접근법들을 사용해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유연성으로 작품을 조망해 봄으로 상호연관된 특징을 파악하여 성서적 의미의 세계 보다  가깝게 그려질 것이라는 쉴링턴 의도를 엿볼  있다.  더우기 그는 확실하지 않은 누가(Luke)라는 저자의 명칭 대신,  남녀 불문하고 부를  있는 “누가복음의 저자(or, 내적저자 implied)” 혹은 <편집자>라고 지칭한다.  

 

·         1927년에 헨리 캐드버리(Henry J. Cadbury) '누가복음' <데오빌로 1> '사도행전' <데오빌로 2> 명명했다(the making of Luke-Acts, London: SPCK, 1961, 11).     두책의 저자가 누가라고 하는 통설에도 캐드버리 저자가 불분명하다고 확신하기에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하지만 스코트 스펜서 두책 사이에 있는 요한복음을 건너   없다는 명분 때문에 캐드버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1]   반면에 쉴링턴  두책의 저자를 밝히는 일보다 책을 따로 그리고 서로 해석함으로 얻어내는 편집자의 성격과 목적을 밝히는 일이 먼저라고 말한다.(29) 그에따라 그는,

 

        누가복음,      서문과 헌정(1: 1-4) /  예수의 기원과 자라나심(1:5 – 2:52) /  사역훈련및 준비(3:1 - 4:13) /  나사렛 예수가버나움을 중심으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고 제자들을 부르다(4:14 - 9:50) /  예루살렘을 향한 복음여행을 시작하다(9:51 - 18:14), /  예루살렘 성전을 흔들다(19:28 – 21:38) /  예수 고난과 죽음의 내러티브(22:1 – 3:56) /  예수 부활과 승천 내러티브(24:1 – 53)  8부분으로 나누고,

 

        사도행전,      서문과 헌정(1:1-2) /   위임명령과 승천을  원시 예루살렘 공동체(1:3 -26) /  예수살렘과 유대 땅에서의 베드로 행전(2:14 - 5:42) /  안디옥 행정 사역의 헬라파 일곱 지도자(6:1 – 8:40) /   바울의 박해와 메타노이아(9:1-31) /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베드로의 이해의 변화(9:32 - 11:18)  /   (바나바 설교)헬라파 기독인들의 흩어짐과 말씀전파(11:19 – 12:25) /  소아시아 남부 지방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내러티브(13:1 – 14:28) /  9. 이방인에 대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조치(15:1-35) / 10. (바울의 2차선교여행바나바와 결별후의 선교경험(편집자 등장?: 15:36 – 21:16) / 11. 바울의 체포예루살렘 재판 그리고 가이사에게 상소를 올리다(21:17 – 26:32)  / 12. 로마에서의 바울의 가택연금(27:1 – 28: 31) 12부분으로 나눴다.

 

 

여기서 출생 이야기들유아기계보 네러티브는 마가복음에 없는 사건을 편집자는 누가복음에 끼워 넣는다. 특히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내러티브(9:51-19:27) 여행 도중에 여러번 편집자 자신이 관철하고자 하는 것들을 드라마 진행의 흐름을 깨뜨리면서 까지 삽입시킨다이것은 편집자의 독특한 기술 방법으로 사건의 전개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  또한 쉴링턴은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도 비교한다.

 

예를들면, 바울서신’ 고린도 전서 122-24(….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에서와 같이 그리스도를 강조하지만, ‘행전속의 아레오바고 연설에서는 2명의 헬라시인을 인용하며 유대 전통 교리인 하나님과 인류의 하나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의 중심성이 부재하다는 것이다그것은 영혼 불멸등이 있는 헬라 철학적 관념이 있는 편집자의 집필 경향으로 보고있다.(29) 이러한 바울의 서로 다른 복음전도 방법이  많은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         참고로,  스코트 스펜서는 그의 저서, “누가복음 사도행전에서    기록의 문학적 틀은 아래와 같은 구성과 행전속에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바울전승과 여러 인물들의 행적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사건별로 누가행전을 병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수의 수난(24:26, 46) 부활 이후의 모습(24:13-32, 36-53 :  1:3)

 승천과 재림(1:11), 성령세례(예수가 여전히 함께 하심3:16, 1:4b-5), 

 증인(24:47,48, 1:8) 권능을 기다림(24:49, 1:4a)

 제자들의 명단(6:13,  1:13 가롯유다 제외)

 

 베드로와 요한은 초기 교회 영적 지도자로 등장( 3:1-4:22, 8:14-17)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가 언급된다(12:1,2)

 

 

 

4.     문헌의 저작 기간과 연구방법 그리고 비평

 

 

·         문서를 읽는데 있서 문서의 기록과 연관된 요소를 먼저 탐구하고문서 내용의 진술된 역사적 사실을 살피며 읽어가야 한다고 쉴링턴 강조한다말하자면 편집자의 의도가 담겨있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사고방식사건및 상황등을 스터디 해가야 한다는 것이다사람은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범위에서 사고하며 행동하고 기록한다(self appropriation). 그러하기에 어떠한 문헌들의 연구도 기록자의 사고 범위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약에 그런 상태를 넘어 초월적인 사고도   있다면그야말로 그는 니체가 말한 초인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쉴링턴 그저 신학교에서 배운 그것이 전부인양 단순 실재론 있지 말고역사 비평적인 비판적 실재론으로 상상력 함께 사실주의에 접근해야 한다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공부하는 동안 데이터에 대한 경험을 얻을 이고 자리에서 무엇을 함께 느끼는가그것이 어떠한 가치와 효용성 우리에게 주는가등등을 분별하고,  그것에 대한 판단과 함께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결정해야 하는 인식의 4단계를 거치는 것이  문서탐구의 기본이라고 쉴링턴’ 말하고 있다.  

 

·      쉴링턴 마태 편집자보다는 적은 비율이지만 마가복음을 누가복음 편집자가 의존했다는 것에 확신한다.(39, 사건 전개에 드라마적 힘을 주고자 순서를 일부 변경한 것도 있지만마태는 80%, 누가는 50% 인용한다).  한가지 예로 마가복음의 수난 내러티브는 마가복음에 의존하고 있지만예수님의 예루살렘까지의 여행 네러티브는 누가복음만의 유니크한 드라마를 전개하고 있다그런데 누가문헌에 인용한 자료들에 한계로 인해 확실성의 증거가 부족하다특히 사도행전이 그렇다참조한 전승되어진 자료들의 성격이라는 것이다(Gerd Ludemann)그러므로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편집자의 뛰어난 상상력이 요구되어   밖에 없지 않겠는가 

 

     또한 누가와 마태  복음 공히 인용한 Q자료누가만의 L자료마태만의 M자료등이 있었다고 한다.  아돌프 하르낙(Adorf von Harnac) 의하면 사도행전은 편집자가 손을 ,  베드로 연설을 포함한 예루살렘-가이사 자료와 스테반의 연설이 포함된 안디옥 자료등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43). 사도행전 전반기 중심 사도는 베드로다누가복음의 스승을 3 부인하며 배신했던 용기없는 부정적인 베드로를 상기한다면전혀 다른 긍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적어도 이것은 2가지 자료가 있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또한 누가편집자는 마가복음의 수난 네러티브(22:54-23:49) 마태편집자가 했듯이 증보화 작업을 했다.

 

 ·      누가의 작품에만 기록되어 있는 단어,  5 쓰여진 '카텍세스'(kathexes: 시간장소줄거리등을 순서대로 연속하여)  한번만 쓰여진 '아나타소마이'(anatassomai: 기록을 편집하다)라는 단어와 같이 작품은 다양한 사건 유형을 따라 나설  있게 쓰여졌고또한  작품의 내용과 사건의 전개와 서술방식에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회개와 구원이라는 특정한 단어예수와 베드로 그리고 예수와 바울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과구약이라는 자료 그리고 당시에 차별을 받던 여자가 남자와  평행되는 일정한 패턴을 선호하는 형식의 구성을 보여줌으로써이러한 통일적인 요소들로 독자에게 스토리 전개를 편안히 보여주는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쉴링턴 말하고 있다.[2]   

 

     이에대해 스코트 스펜서는 앞서말한 그의 책에서누가복음은 신앙적 바탕을 염두에    다른 장르의 문학작품이라는 것이다특히 누가복음은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七十人譯, Septuagint)  인용했고 ,   마가복음(혹은마태복음도)  Q자료 등의 선행 문서들과 자료들을 가지고 쓰여졌고  파편들에 창조적 생각과 함께 도전을 심어주는 문체 구성으로 내러티브적 구성(diegesis) 깔려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S23,24).  내용의 본질이 Parsons’과  Pervo’가 말한대로 예수의 생애와 승천이지만, ‘성령과 기도 작품의 중요한 테마 누가복음은 쓰여졌다 했다하지만,  문체로 볼때 편집자의  1세기 헬라 토착어인 코이네 수준으로 대단한 편은 아니라고 한다(S21,22).[3] 

 

·       그런데 편집자는 구약의 모든 구절의 경전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대로 인용했다고 Jacob Jervall 말하고 있다(34).  하지만, BC8세기때의 '호메로스',  BC1세기 줄리어스 시저 시대의  '하느님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다라고 말한 '베르길리우스' 서사시적 역사나,   "지혜란 눈앞의 일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내다 보는 것이다."라고 말한 BC2세기 로마의 작가   '테렌티우스'(Terentius), 그리고  "모든 문제는 인내로 .. 하지만 누구라도 혼자서는 지혜로울 수가 없다." 라고 말한 '플라우투스(Plautus)등의 작품에서 나오는  아포리즘(aphorism) 필두로 시대적 문학적 수사기법을 참조 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왜냐하면 그런 문학적 표현이  시대의 트랜드였다는 것을 반드시 우리는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가는 것이 진행 과정과 의미의 실마리를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현대신학자들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   또한 저자는  책을 통하여 무엇이 일어 났는가라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초점을 살피는 것에 앞서당시 편집자가 처한 1세기 상황과 거기에 따른 사회적,역사적 분석으로 문학 작품으로서 그가 추구한  문헌에 대한 신학적 주제를 보여주려 힘썼다 말한다그러한 배경지식적  탐구로 복잡한 네러티브를 지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추구하는 바를 주제 주제마다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어 독자들이 훈련된 탐구를 하도록 하는데 촉매제가 되기를 쉴링턴 바라고 있다.

 

·         앞서 말한바와 같이 바울서신과 달리 누가복음-사도행전은 저자 보다는 편집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조지 쉴링턴  권고한다필자도  점에 동감하며  마태-마가-요한 복음서 역시 편집자로 불러야 한다 생각한다 까닭은 쉴링턴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이 언급했듯이 직물을 짜듯이 짜여진 편집의 흔적들을 내용구성에서 읽어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그런데 사도행전 편집자가  먼저 쓰여진 바울서신들과 그리 친숙하지 않다고 쉴링턴 주장한다 말은 누가문헌은 특히 바울서신들을 자료로 이용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고다만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자라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바울을 묘사하고 있을뿐이다(22:3).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를 떠나유대인들에게는 혹평하지만 로마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은그러나 누가 썼는지 확실히 밝힐  없는 누가문헌의 저자유대전승이나 헬라문학적 수사기법을  알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그리고 쉴링턴 <아마>라는 말과 함께와 삶의 정황을 추리하여 <저작장소> 빌립보나 데살로니카로 보고 <저작연대> 주후 75 - 90년으로 잡는다말하자면 쉴링턴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1세기 말의 문학작품이라고 본다하지만 필자로서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       왜냐하면,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하여 폼페이가 매몰되는 지경에 이르러 로마사회가 뒤숭숭 했었던 79년에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사망으로 예루살렘 헤롯성전을 파괴시키며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고  노예로 로마까지 데려와 콜로세움을 짓는데 사용했고그런와중에 신흥종교인  당시 기독교인을 더욱 몰아세운  장남 티투스가 황제로 즉위했으나 81년에  티투스 황제가 병사하고뛰어난 행정능력을 보유해 로마를  이끌어 갔지만 신흥종교인 기독교의 최대 박해자로 낙인찍이고 있는동생 도미티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한 해이고, 96년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암살되고 기독교를 탄압하던 오현제들그중  번째 황제인 네르바가 황제로 즉위한 해이고 보면그러한 사회 분위기상 저작장소나 저작년도가 그때일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어도 180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붕어할때까지는 그런 저작을 세상에  보내기가 어렵지 아니했을까 생각한다또한 시대는 이그나시우스저스틴등의 비롯한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던 시대였다그런 상황에 전승이나 편린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숨어서 구성해서 편집작업은  수도 있겠지만로마 병정과 첩자들이 우글거리는 로마의 주요도시인 데살로니카나 빌립보 같은 곳에서 만들  있겠는가?  일반서신으로 보내는 편지도 아니고 말이다그러하기에  쉴링턴과 같은 학자들의 주장에 필자는 동조하기가 어렵다.

 

·       또한고대 작가-예술가들은전문 필사들과 달리다른이들의 작품을 첨가 혹은 삭제로 수정하거나 변경시킬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그러므로 적어도 공관 복음서 역시 공감을 얻기 위해 자료를 이용하거나 드라마 구성을 통하여 작품의 흥미를 갖도록  당시 다른 작품들처럼 편집자들에 의해 쓰여졌을 것이다.[4]  그렇다면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도 당시 헬라-로마 문화권의 문학형태에서 벗어나 있을 수가 없다. 이미 그러한 드라마적 형식은  문학작품들로부터 내려오면서 시대적 욕구에 맞게 편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24 50-53절과 사도행전 12, 11, 22절에,  “부활한 예수는 하늘로 올리워 지셨다 그리하여 승리하신 그리스도는 세상속에 교회의 주인이 되셨다 쓰여져 있다하지만  책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1세기말을 향해가는 시점에  문헌을 쓰고 있었다면 바울 사역이 끝난후 40년이 지나고 헤롯성전이 파괴된지 20년이 지난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탄압이 점점 드세지고유대교로 부터 비판도 더욱 거세지는 그때  자리에 나사렛 예수는 속세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45). 이런 상황속에서 누가문헌 속의 사고 패턴과 저작연대를 어찌 설명해야 하는지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로마에서의 바울의 감금을 복음서 중에서 유일하게 언급한다

 

     이것은 로마의  대략 250년간의 기독교 박해의 기간동안 방대한 누가문헌 드라마를   었었던 때는 언제 였을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로마는 종교를 비롯한 타국의 문화를 수용했다그래서인지 로마는 숭배대상을 그때 그때 바꾸고 그래서 신앙심의 깊이가 없었다고 한다.[5]   하지만 유독히 신흥기독교의 발흥에 로마는 박해 기간 내내 꾸준히 압박하고 있었다이런 까닭들로 폴리캅저스틴이 순교했던 시대이긴하나인간을 생각하던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간은 아니었을까 ….2세기 후반은 아니었을까 ….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그에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는 기독교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으로 생각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5.     나가면서

 

필자로서는 위에서 간간히 비평한 것과 같이 여러가지  말이 많지만누가복음에 있는 편집자와  3-4가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로쉴링턴은 편집자를 초대교회 역사가 보다는 “초기기독교 내러티브 신학자”로 보고 있는데 역사적 사건에 복음이 퍼져가는 <---클라이막스-이라는 (신학적문학적 구성의 장르를 펼치는 편집자 천재적 집필에 필자는 차라리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뛰어난 내러티브적 드라마 작가 성격이 농후하다고 본다.

 

둘째로한가지 집고 넘어 가야 할것이 있다영어성경에서는 그렇다해도 한글번역 성경에서는 복음서에서 삽십이립의 예수가 처음만난 율법학자들을 하대를 하는  보여지고 있다.  나이에 있어 그가 예수보다 훨씬 아래며는 모를까  더구나 그들은 기득권층이 아닌가 말이다더우기 불혹의 사십이 넘어 율법에 평생을 매달려  상당한 지식인이었다면 저렇게 질문을 주고 받을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한글 번역에 문제가 있다 생각이 든지는 오래전 일이기도 하다.

 

셋째로아나니아와 삽비라와 재산을 내어 놓는 네러티브에서사도행전 5 1 -11절의  재산을 교회에 바친것이기에 이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것이 아니다그래서  재산의 반만을 바쳤던 그들은 그런 행위가 결국 하나님을 속였다는 것이기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 했다는 … 그래서  교회는 물론이고교회 밖에서도 두려워 했다는 기록 …..더구나 그들을 야심에 가득찬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과연 그럴까[6]  …. 그리고 누가복음 18 22절에는 예수께서는  말을 들으시고 "너에게는 아직도 해야  일이 하나  있다있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것이다하셨다.   누가복음 19:1-10절에 예수님을 대면한 삭개오 이야기 나온다그는 선생님저는  재산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갑절로 갚아 주겠읍니다.” 라고 그는 약속을 합니다.

 

따라서 1. 교회  재산을 바쳐야 한다. 2.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 아니면,  3.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예수님이 말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을 교회에가난한 이들에게?  …. 전재산을전재산의 반을? …..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 한편원시 기독교에서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의 이야기는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도 보듯이 신성 모독죄의 그리이스-로마처럼 유대교의 공동체 모독 신성모독라는 것과 연관된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필자는 해본다그것은 당시의 종교적 트랜드가 아니였을까 ……

 

마지막으로,   “오늘은 내가 당신의 집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라고 예수님이 세리장 삭개오에게  여부를 묻자 그는 예수님을 초대했다그렇다면 그후 기록이 없는 그날함께 저녁을 하며  (전승에 의하면 삭개오 어머니도 있었다고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예수가 바로 야훼 신이라고?  나의 십자가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나만을 찬양해야 천국에  것이라고.. 아닐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주변이야기들과 함께 삶의 애환과 분노 또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로마의 압제와 유대왕국들의 수탈과  하수인들의 착취행위 그리고 전쟁들로 인한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마당에 어찌 살아야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과 세리장 삭개오  서로 나누지는 아니 했을까? . 오늘날의 나와 너의 삶의 이야기들 말이다.  ()

 

blog.daum.net/james_kang_2019/234

 

■삭개오(Zacchaeus)와 예수(Jesus)

1. 설교에서 언급 했던 오늘은 Palm Sunday 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많은 사람들이 King David 와 같은 예수로 말미암아 좀 더 나은 생을 기대하며 그 종려나무를 흔들며 맞이하고 있었지만, 예수

blog.daum.net

 

참고

[1] 스코트 스펜서,누가복음 사도행전,소기천(대한기독교서회, 2018) 18

 

[2] (본문에서)   페미니스트적 해석의  부분을 차지하는 해방을 지향하는 해석학의 원리들 가운데 하나는 의심을 품는 태도와 실행이다사회적으로 소수자인 노예농부문맹자아이들병자들여성들을 다루는 본문들이 있다특별히 여성들을 다루는 본문은 여성들의 건강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본문들은 엘리트 남성들이 힘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던 당시의 질서였던 계급 제도의 이데올로기가 배어있는 가부장적농경문화를 반영하는 본문들이다더우기계속적으로  세기가 흐르는 동안  본문들에 대한 주석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가부장적 계급 제도에  사회의 신적인 질서를 주입시키며  체제를 강화시켰다

 

의심의 해석학은 여성을 2차적인혹은 종속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여온 오랜 뿌리를 가진 전통적 해석을 타파한다 나아가노예약자압제 받는 자들의 해방자로서 성경의 하나님을 묘사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심상은 페미니스트 해석이라는 망치질의 모루(anvil)역할을 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래로 페미니스트 성경학자들은 성경 연구  신학 연구 속에서 페미니스트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비평(특히 역사비평) 도구들을 검증하여 시행하도록 요청했다.

 

[3] p51,  누가복음-사도행전 안에 있는 역사는 1차선도 2차선도 아니다그리고  보다  나은 메타포를 찾을  없다고 말한다오히려 누가복음의 차선들은 뒤섞여 있으면서도 또한 모두 인식 가능한 특징을 갖고 있다다르게 표현하자면누가복음-사도행전의 역사는 두개의 대등한 영역 구속사와 세속사를 드러낸다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 어느 한편도 상대방을 침해하지 않는다구속사는 영원히 보다  의미의 역사에 기여한다.

 

 로마 세계에 속한 역사적 통치자들은 그들의 영향력의 영역에서 구속사의 자리를 인식하는 것이 마땅하다유사하게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구속사   단계) 보다  세상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명해진 사명을 인식해야 한다 영역 모두는 누가복음-사도행전의 내러티브 안에서 사이의 구분을 흐릿하게 하는  없이 상호간의 교차를 보여주면서매우 적절하게 진술된다.

 

[4]스코트 스펜서,누가복음 사도행전,소기천(대한기독교서회, 2018)  32

 

[5] 에드워드 기번 (로마쇠망사1,민음사, 602)  "그들은 온갖 미신적인 공상들을 제멋대로 받아들였다또한 살아가면서 처하는 우발적인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신앙심의 깊이는 물론이고 신앙의 대상까지도 결정했다수많은 신들 가운데서 숭배 대상을 연달아 바꾸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느 신에게도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하고 생생한 열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6]윤철중목사출처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6963

 

바울의편지(Paul's letter)에 대하여
(펌)


1. 헬레니즘 시대에 접어들면서 편지 형태가 하나의 문학 유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즉, 개인이나 단체간에 자유롭게 의사를 전달하는 편지 외에, 동시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상을 밝히는 데도 편지 형태를 사용했다.

     (▪하지만, 문맹자가 대부분인 시대, 편지를 읽어 이해할줄 아는 사람에게나 소용있는 일일텐데.....)

2. 특히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이 이런 편지 형태를 즐겨 썼다. 그래서 개인적 성격의 편지를 ‘편지(Letter)’로, 공공적 성격의 편지를 ‘서간(Epistle)’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3. 사도 바울 역시 선교 여행 중에, 자신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와 지속적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다.

4. 바울은 한 개인에게 편지를 보낸 적도 있지만, 대부분 사도요 선교사로서 해당 지역의 교회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편지를 썼다.

5. 따라서 단순한 개인의 편지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구체적 삶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고 널리 전하는 ‘사도적 매체’로 활용하였다. 이런 바울의 편지가 모범이 되어 후대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형태로 자신들의 신앙을 체계 있게 표현하고 발표하였다.

6. 맨아래 편지들을 보면 바울만의 독특한 형식이 아닌 당시에 쓰인 형식으로 편지(서간)를 그도 작성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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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고상한 말이나 인간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의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약하였고 두려워하였으며 몹시 떨었습니다. 제가 가르치거나 전도할 때 지혜의 설득력 있는 말로 하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한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고전2:1~5)


And when I came to you, brethren, I did not come with superiority of speech or of wisdom, proclaiming to you the testimony of God.For I determined to know nothing among you except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I was with you in weakness and in fear and in much trembling,and my message and my preaching were not in persuasive words of wisdom, but in demonstration of the Spirit and of power,so that your faith would not rest on the wisdom of men, but on the power of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