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란 무엇인가?(2018년 3월) ㅡ 제임스강

Narin Pusil 2023. 3. 17. 12:55

 

새 술은 새 부대에

구습(bad customs)에 끄달리지 말고 떨치고 바로서라

   (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용기와 함께, 갈릴리 바다위를 걸어가라!!

그러면,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할 것이다.

 

■[요약] 설교란 무엇인가   

 

3세기 전반에 학문적인 깊이나 창의성은 없었으나 자비롭고 부드러우며 순전하고 조화의 영성을 갖고 활약했던 '키프리안' (Cyprian)은 설교자사제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4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지성과 인성을 지니고 풍부한 행정 경험까지 지닌 암브로시우스(Ambrosius)는 민중에 의해 사제로 추앙되기전에도 설교를 회중에게 하였다. 신정(theocracy), 왕정(mornachy)의 그때와 종교개혁을 지나 근대 그리고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성직자의 권위로 설교하던 시대였지만, 시민주권 국가시대의 오늘날의 교육수준과 반드시 필요한 인성을 지닌, 말하자면 안병무 선생과 같은 소위 평신도도 설교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까닭에 시대적 세계관과 가치관의 무상(panta-rhei)함을 바라보면서, 과연 설교란 무엇이며 그 중심은 무엇이 되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권위에 앞서 기독인은 예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공생애에 나오면서부터 외쳤던 그리고 7일간의 예루살렘 마지막 여정의 사역을 마치기 전까지 그리고 부활한 후 40일동안 가르치셨던 “하나님의 나라”, 이것은 변함없는 예수인들의 설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청중들 곧 회중들 ... 배움과 앎이 없었던 로마와 헤롯왕정, 헤롯성전의 종교권력 그리고 그들의 기생충들로 부터 착취와 수탈로 비참한 삶에 허덕이고 있었던 갈릴리동포(Oikos)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평화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그 당시에 예수는 담당했어야 했지만 ... 하지만 오늘날은 그 회중들이 청중들이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설교를 그들의 전문성의 시각으로 이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설교(학)는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패러다임과 가치가 변화된 오늘날 대중의 회중이 요구하는 그들의 필요성을 반드시 알아야하고 설교에 적용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설교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설교란 무엇인가?                

작성자: 강성형(Y14228)   

 

 

들어가며 

 

 

Collins English Dictionary에서 설교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 설교는 교회 봉사의 일환으로 성직자가 제공하는 종교적 또는 도덕적 주제에 관한 이야기"(A sermon is a talk on a religious or moral subject that is given by a member of the clergy as part of a church service).  

 

설교라는 것은, 첫째가 회중들을 위한 교회의 봉사중에 하나요,  둘째는 설교자가 제공하는 종교적 혹은 도덕적 서비스라는 것이다.   18세기초까지 설교는 설교학으로써가 아닌 일종의 기예론(技藝論,Kunstkehre)로 불리우고 있었다. 12 기예를 설명하자면, 한국의 다산 정약용은 기예를 그의 기예론에서 ‘제힘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하였다.  당시 설교란 인간의 정신적 고급노동의 표현기술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설교에 대해 유명한 신학자 반델 베흐트 (W.H. van der veget)는 그의 칼빈 설교집의 서론에서, 칼빈 설교관으로  설교의 중요성에 대하여 엄청난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설교 없이는 구원 없다.”(Zonder de Prediking geen heil)   과연 그러할까?  과연 설교라는 것이 무엇이며 설교가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여러요소중에 설교의 대상, 각 시대적으로도 필자가 보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청중(회중)에게 설교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것인가. 역사적으로 어떤 부르짖음은 그 집단의 모임과 그에 대한 설립과 맥을 같이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하나님(예수,삼위일체)를 증거하는 설교로 말미암아 시작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집단의 MOTTO와 같은 신조를 옹호하기 위한 주창적인 그날의 선포가 교회사이고 역시 곧 설교의 역사이며 한편으로는 주창자인 설교자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예로 순교자 저스틴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기독교 증거자요 주창자들의 역사이기도한 설교사(說敎史)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설교에서 부터 시작해서 시대에 따라 어떻게 설교가 발전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성경신학에서 설교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듯이 설교는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중심테마로 되어야 한다.  복음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메시지이기에 선포자인 설교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신학자들의 견해이다.  

 

 

 

설교는 어찌 진행 되어오고 있었는가  

 

4세기 로마시대에서  성직자가 되는 길은 세레를 받았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성직자가 된 뒤에 세례를 받는 일도 있었다. 또한 헬라철학의 일파인 신비주의를 복음에 연결시켜  다른이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자기확신이 있는 상류층이 성직자가 된다고 결심하면 바로 주교의 자리에도 오를 수도 있었다.3  당시 아리우스주의자에게 눌려있는 삼위일체파가 주교의 죽음으로 자신들에게 호감을 보이던 학문적 교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던 주 장관 암브로시오를 주교로 세웠다. 이 바람에 자연스럽게 아리우스파도 그의 밑으로 들어왔다.4 그러므로 당시에는 암브로시오와 같이 사제 서품을 받지 않아도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이 훗날에 교회권력이 커져감에 따라 설교를 할 수 있는 직분도 설교 내용에 관한 규정도 생겼다.

 

역사적으로 케리그마(자기복음 주장.선포) – 디다케 (믿음과 행실의 윤리적 가르침)- 파라클레이스 (위로와 권면) – 아남네시스(회상) – 호밀리아(성서주석) – 디아레고마이(확증)등등으로 내려오다  칼 바르트(Karl Barth)에 의해 독립된 신학으로 강화되기 전까지는 설교는 조직신학영역에 갇혀 있었다. 그리하여 현실문제 보다는, 설교란 무엇이며 어떻게 설교 할 것인가 라는 본질 규명에 매진하게 되었고  조직신학적인 설교에서 실천 신학적인 설교로 전이 되었다.5  

 

 

설교도 진화하고 계속적으로 변천해오고 있다.     

 

설교에 대한 여러 생각들  설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재해석이다.6  복음에 대한 단순한 선포와 증거여야 한다.7  참된 설교란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이다.8  여러각도의 설교에 대한 정의들이다.  설교(說敎)는 기독교에서 성직자가 해석하는 예배의 순서로  종교의 교리등을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경전(經典) 등을 풀어 이야기하는 행위라는 또 하나의 사전적 의미도 있다.   

 

설교는 기독교 예배의 한 요소로 사제나 목회자(목사, 전도사)가 미사/예배 중에 교리에 대해 강론하는 것으로 개신교 예배(성공회 포함)에서는 '설교', 가톨릭 미사에서는 '강론'이라 한다. 위의 예배요소에 대해 알프레드 E. 그래비(Alfred E. Gravie)는 “개신교의 설교를 로마 천주교의 미사 자리로 올려놓은 것이 바로 루터였고  종교개혁 중에서 교회 설교에 영향을 가장 강력하게 끼쳤다.”고 주장하였다.  

 

가톨릭 미사나  성공회 high church파 감사성찬례에서는 성찬전례가 강론보다 더 중시되지만,  일반적인 개신교에서는 설교가 예배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시의 몇몇의 설교론자들의 설교에 대한 사고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에라스무스 : 설교의 목적은 청중의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  

 

Desiderius Erasmus를 기술한 까닭은 많은 종교개혁자들 특히 모든면에서 루터에게 영향을 끼친 당대의 최고의 학문을 이룬 학자이기에 그렇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설교를 위한 입문서인  "전도서(Ecclesiastes: 설교의 기술에 관하여: sive de ratione concionandi)" 는  4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에라스무스 자신은 그 부분이 3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제 1 부는 제사장의 가치와 효과적인 설교자가 예증하고 경작하는 자질에 대한 논의인데  

특히 2절과 3절은 좋은 설교자가 자신의 레퍼토리에 가져야하는 수사학적 장치에 대한 복습 과정이다. 에라스무스는 성직자가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그 해석에 대한 효과적인 설교를 하기 위해 설교와 설교에 대한 확고한 배경을 가져야한다고 믿었다. 네 번째 섹션은 설교에 합당한 주제에 대한 재료모음으로 그로부터 끌어내기 위한 경전에 관한 참고자료다. 이 섹션은 실용적인 예와 삽화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에라스무스 (Erasmus)는 성직자들이 역사적, 은유적 성경 해석을 결합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은유적 해석에 대해 반대하지도 않았고 그 역시 역사적인 성경적 전통에 기초하여 세워졌다고 했다. 그는 또한 설교를 제공하고 평신도를 섬기는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고전적인 수사학 전통을 사용해야한다고  제안하였다.  에라스무스에 따르면, 설교자의 역할은 회중의 개인 영혼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사제들은 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그 평화를 가져오고, 그들의 원리에 따라 그들의 회중들이 일상 생활을 하도록 격려함으로써 그들에게 평화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설교의 목적은 청중의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 했다. 인간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 사제는 하늘의 교리를 배우고 그 지식을 회중을 통해 더 나은 세상 생활로 옮겨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한 권리와 평화로운 관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전도서를 썼을 때, 에라스무스는 그의 삶의 끝에 가까워졌고 그의 건강은 그 책을 마무리 못하게 할 정도로 쇠약한 상태였다.  성치않은 몸이 였지만 설교에 대한 설득력 있고 영향력 있는 논문을 만드는 그의 열정을 막지 못했고, 또한 그의 trademark인 유머 감각을 삽입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그는 "코끼리가 춤을 추고 사자가 놀고 표범을 사냥하도록 훈련받을 수 있다면 반드시 사제에게 설교를 가르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오늘날에 와서 그의 전도서가 설교의 개혁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역 500년전에 에라스무스는  그의 설교입문서 '전도서'에서 교회가 역량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1536 년 그의 첫 번째 출판과 죽음 사이에 일년에 네 개의 판을 썼습니다. 주교는 수사학 분야의 사제들을 훈련시켜  졸변의 연설자를 제거하고 효과적으로 말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도구와 특성을 주입시키라고 했다. 에라스무스는 당시 비슷한 생각을 표명한 유일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트렌트 공의회가 개혁을 실행하는 동안 전도서를 언급했습니다. 전도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시대에 맞게 변천하고 있읍니다. 다만 변하지 않는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항상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에라스무스는 말하고 있읍니다. 9    

 

 

 

◀2. 루터  “ 저는 긴 설교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경청하려는 청중들의 욕망을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 설교는 예배 중심에 있어야 하고  그에대한 바른 해석과 심풀한 언어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설교의 목적이 바로 회중(민중)을 이해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1514년 본당 설교자가 된  루터는 평민들을 위해 성서를 심오하고도 알기 쉽게 해석했으며, 성서를 평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연결시켰다.  이와 더불어 비텐베르크 대학교는 그 당시 유럽 대학교들이 직면했던 학문적 위기, 즉 낡은 학문 프로그램과 새로운 학문 프로그램 사이의 긴장관계에서 어느 편인가를 지지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루터가 출현하기 이전 비텐베르크의 지도적인 교수인 마르틴 폴리히는 전통적인 토마스 아퀴나스주의를 선호하는 그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인문주의의 영향에 호의적임을 보고 루터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 신학자들의 사상을 성서를 직접 연구하는 성서인문주의로 대체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도구로 사용했으며, 교리적 규범으로는 '옛 교부들'(초기 교회 교부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를 활용했다.

 

     루터는 선배 동료인 카를슈타트와 젊은 친구인 필립 멜랑히톤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고 자라났다. 에라스무스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경건적 복음운동에 중심에 있었으며 성경적 휴머니즘(Philosophy Cristi)을 강조하던 철저한 복음적 휴머니스트였다. 당시는 종교개혁자들과 특히 에라스무스의 결혼관의 영향으로 딸들이 상속재산을 들고 수도원으로 들어 가지 않아도 되는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찾아온 시대였다.10  예수가 참석했던 가나의 혼인잔치를 예로들어 ‘수도사의 맹세’는 성서에 어떤 근거를 갖지 못한다거나, 교황 레오10세에게 보낸 반박편지에서 1498년부터 사제들의 결혼 허용을 주장하여 사제와 창녀들과의 불륜에서 벗어나게 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주었다.11 이러한 성서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바탕으로 성서를 해석하였고 의문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말을 하도록 촉구하던 에라스무스를 롤모델로 삼고 있던 루터는 일반교육을 에라스무스의 저서들에서 그의 설교관에도 적용하였다.

 

     둘의 일치를 본것중에 하나는 부부관계를 극찬했지만 부부간의 위계질서를 여성의 의무로 본 것이다. 이는 르네상스로 인한 시대적 요청이었기 때문일것이다.12 하지만 종교교육만을 고집했던 루터와 일반교육을 중시했던 에라스무스는 훗날 둘의 논리가 서로에게 먹히지 않는 아포리아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다른 토양에서 자라난 품성의 차이에서 오는 사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13  그런 근대 현대의 설교자들의 그런 모범이 되는 루터의 설교 특징에는 3가지가 있다.

 

    설교는,

첫째 교회 예배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예배의 구심점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가 없으면, 모이지 않는 게 낫다고 하였다. 둘째 1515년 설교에서, 그는“성경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그 누구라도 성경을 잘못 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여러 구절은 쉽게 과장될 수도 잘못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고 하며 성경의 적절한 해석의 기본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셋째, 평범한 사람들의 단순한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설교의 목적이 바로 회중(민중)을 이해 시키는 것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은 설교하실 때 우화로 속히 이어 나가셨고 양, 양치기, 늑대, 포도원, 무화과나무, 씨앗, 들판, 경작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래서 가난하고 평범한 평신도들이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루터의 단순한 설교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했다.14  그의 칭의론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복음만을 전하라는 루터의 주장, 그렇다면 당시 로마 카톨릭은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리고 무지한 카톨릭 신자들 모두는 의롭지 아니했다는 것인가? 교회개혁 당시 카톨릭 상층부들의 부정에 대해 반기를 들기 위했던 루터의 시대적 주장은 아니었을까?

 

 

강대국들에 짓밟여지는 조국을 보고 다시 회복해 주실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했던 하박국의 칭의와, 유대주의자의 율법과 전례의 이질감을 복음을 따르려는 이방인들에게 칭의론적 주장(설교)을 설파했던 바울등, 하박국-바울-루터 각각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깊히 숙고해야할 칭의론, 자칫하면 본훼퍼가 말한 값싼은혜를 양산시킬 위험이 있는 이들의 칭의론, 그 속내는 어쩔 수 없었던 각각의 시대적 상황과 패러다임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설교의 입각점도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필자는 본다.    

 

 

◀3. 쯔빙글리  –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성경의 가르침으로 청중(동포)과의 일치됨이  그의 설교자세였다  

 

쯔빙글리는 그가 사는동안 수천 번의 설교를 했지만 현존하는 설교는 아쉽게도 거의 없다.  수천편이 남아 있는 칼빈과 대조적이다. 그것은 그에게는 칼빈과 같이 설교를 남긴 속기사가 없었기 때문이며 원고 설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빈처럼 원고 없는 설교를 했지만 그것은 준비의 부족이 아니라 청중과의 일치됨을 위한 그의 자세였다. 쯔빙글리의 설교는 기본적으로 성경 본문을 강해하는 설교였으며, 주로 한 가지의 책을 선택하여 차례대로 설교하는 시리즈 설교를 선호했다. 때로는 주제에 맞는 설교를 하기도 했으며 다른 곳에 초청을 받았을 때 그곳에 요청되는 본문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는 설교에서 특별한 수사적인 것을 가져오는 것을 거부했으며 화려한 몸짓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했다. 몇 편의 설교가 남아 있지 않지만 쯔빙글리는 모든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할 것과 불신과 미신과 우상을 타파할 것을 강조했다. 한 책을 순서대로 설교하는 쯔빙글리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의 설교는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과 어거스틴(Augustinus)의 요한복음 설교를 예를 들면서, 자신의 설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쯔빙글리의 설교의 모습을 엿보게 하는 자신의 말이 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심은 씨앗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심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마태복음을 따라 전 복음을 설교했습니다." 마태복음을 전하고 난 다음 쮜리히의 시민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위대한 지원자가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는 사도행전을 설교했다. 계속해서 쯔빙글리는 디모데 전서와 갈라디아서 그리고 베드로전후서와 히브리서를 설교했다. 성경본문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를 찾아 전하고자 하는 그의 설교는 실로 전통을 넘어 본문으로 회기하는 거대한 개혁이었다.15  

 

자신의 민족 스위스인을 위한 배려는 그의 설교 곳곳에 나타난다. 그는 설교가 성경적이면서도 듣는 청중들에 맞게 적실해야 할 것을 알았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동포 회중들을 가능한 많이 진리로 모으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쯔빙글리의 설교가 개혁의 시발점이며 등뼈가 되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태복음부터 본문으로 돌아가는 그의 노력은 전통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4. 청교도 설교론 - “교회의 타락은 설교의 타락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순전한 말씀 전파와 그에따른 강력한 말씀 적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16세기 말에서17세기 초, 영국의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나단 에즈워드의 신학적 스승이었던 “윌리암 에임스”의 설교론은 오늘 21세기 한국교회에게 귀한 교훈과 경종을 준다. 그가 말하는 설교란,

 

첫째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이며,  둘째는 그 말씀의 강한 적용이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교회의 타락은 설교의 타락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청교도주의를 부흥운동 각성운동 설교운동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은 근저에 성경운동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는 설교를 잊지 않았고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여러가지 면에서 어렵게 된 것은 세속적 가치관을 가지고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설교하기 때문이다. 결과 세속적 특히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교회를 다스리기에 목사들은 물론 교회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각성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즈도 강한 적용을 잊지 않았는데, 이러한 점에서 한국교회의 설교자 들이 겸손함으로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 16 17  

 

 

◀5. 소강석

 

서울 신학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정인교와 같이 "설교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소강석 역시 16세기의 칼빈 그리고 현대신학자인 반델베흐트가 주장한 “설교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몸(육신)을 입은 것이 예수라면 문자를 입은 것이 성경이요 그리고 그 시대의 언어를 입고 소리로 전달되는 것이 설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설교를 통하지 않고는 참 구원이 있을 수가 없다는 논리다. 목사의 설교는 교회 순환계의 핵심이요, 인소싱의 요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는 논문 발표나 저널리스트의 논설, 웅변이나 연설도 아니며 에세이스트의 감상문이 되어서는 안되며 설교는 곧 복음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객관적인 말씀이 설교자의 주관적인 영감 속에 레마(영감의 말씀)로 부닥친 후에 그 레마의 말씀이 성도들의 가슴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를 너무 교리적이고 상투적이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안되고  설교자는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하고 내러티브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즉,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한다. 또 그는 듀크대학교의 설교학 교수인 찰스 캠벨 박사는 하나님의 광대로서의 설교자를 강조하고 있다며 설교 속에 설교자 자신이 드러나면 안 되고, 설교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어릿광대가 되어서 말씀이 온전히 효과적으로 성도들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가끔 대중가요를 개사해서 부르기도 하고 유머를 하기도 하고 문지방 언어를 쓰면서 성도들과 소통하며 마음 문을 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수단이요, 테크닉일 뿐,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의 가슴 속 깊이 말씀의 씨를 심겨지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는것이 과연 현대적 설교인것일까? 차라리 아무 구애를 받지않는 팟케스트 방송으로 그런 설교를 뿌리면서 교회부흥을 꿈꾸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18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한 칼벵이나 쯔빙글리의 후계자 불링거의 주장을 소강석도 하지만 이것은 비록 르네상스와 문예부흥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이라 할지라도 배우지 못한 민중과 구별되고 카톨릭과 구별되어야 하는 성직자의 권위의 하이어라키가 통용되는 16세기 왕정시대의 상황에서 나온 관념과 사상에 기인하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19  여기에 의미있는 말을 덧붙힌다. 독일의 카톨릭 신학자인 버나드 헤링은 설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설교는 회중을 알아야하고 그 회중에게 설교해야 한다.  설교자는 회중들을 위한  무엇인가를 가져다 줘야하며 이 목표를 위해 가능한 모든 능력을 동원하되 작위적인 기교는 삼가 하여야 한다.20   

 

 

◀6. 안동교회 원로목사이신 유경재는,     

“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미래를 제시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사회는 타락하고, 국가권력은 부패하게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바로 정치와 관계있다. 흉악한 정치의 결박과 멍에와 압제를 제거하고,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일을 하나님은 기뻐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다” 라는 것이다.  “예언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기관이 교회며,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기관이라 말하며 교회가 세속적 집단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미래를 제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가 아니 설교가 이 사회에서 바로 이런 예언자적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사회는 타락하고, 국가권력은 부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 설교가 역사 현장을 외면한 채 너무 일반론에 치우치거나 원론적인 성경 이야기로 끝맺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설교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스스로 신학적 확신이 없거나 교회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으면 대체로 목사는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 채 무의미한 설교를 되풀이하기 쉽다. 다시 목회를 하게 된다면 인문학 서적을 두루 섭렵하여 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면서 말씀으로 제대로 해석하고 조명하는 설교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바로 정치와 관계있다고 말한다. 군사독재가 이 땅에 펼쳐 놓은 흉악의 결박과 멍에와 압제를 제거하고,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일을 하나님은 기뻐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이다. 고통 가운데 있는 역사와 상관없이 그저 교회당 안에 엎드려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와 상관없이 무엇을 기도하며 무엇을 위해 금식하는 거냐고 그는 되 묻는다.  고난의 역사에 담긴 의미를 물으며 함께 고통하면서 기도할 때 그것이 참된 기도가 된다는 것이다. 21   

 

 

◀7. 안병무  민본(民本)인 위민사상(爲民思想)

 

:  어느 누구에게 소유되지도 않은, 스스로 모든 민중에게, 그 비통한 이들을 위하여 있는 야훼!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다.”  안병무는 주교가  되기전부터 설교했던 고대 설교자 암브로시오가 생각나게 하는 소위 평신도 설교자이다.  그는 야훼, 모세의 성막 속에 거하시는 분, 예루살렘에 세워진 웅장한 건물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속에 유폐되기를 거부하고, 세상 어느 누구에게 소유되지도 않은, 스스로 모든 민중에게, 그 비통한 이들을 위하여 있는 야훼! 바로 그분을 예수님은 발견했기에 민중신학을 말하고 있다.  그들을 위하여 설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우기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도 민중들이기 때문이다.  위민-애민 사상은 공맹의 시대를 떠나 조선에도 있었지만 그 시각은 한시대의 사고의 귀퉁이 부분에 있던 민중의 시각이 아니라 가진자들인 기득권의 사대부의 눈으로 본것이어서 바른 사고였던 것이 아니다. “비통한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쓴 저자 파커 . 파머가 그 책을 읽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함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비통한자들이란 체제속에서 압제와 불이익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따라서 안병무의 시각으로 보면 <비통한자들을 위한 신학>,<비통한자들을 위한 설교학>등이 전범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22   

 

 

그렇다면 설교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하는가?   

 

설교는 개신교 이전 패러다임에서는 그다지 필요를 느끼지 않았지만 이후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교회의 생멸에까지 필요로 하는 패러다임으로 된것들중에 하나이자 전문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설교학은 신학의 모든분야를 샅샅히 끝내고 들어가는 학문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러므로 설교란 복음을 가르치는 총체적인 신학적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23       그때와 지금의 시대적 상이성, 사상적 간격, 문화적 이질성, 세계관의 차이등 총체적 패러다임이 변천과 함께 과학의 발달을 저변으로 문화적 예술적 미디아적의 엄청난 발전과 패러다임의 변환의 지금은, 신학 및 인문학적 소양을 포함한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수사학적 지식과 그것을 표현하게 할 훈련으로 인간 상호간의 소통하게하는 말하자면 선천적 재능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 재능을 보완해주는 후천적인 노력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설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에 필요한 요소를 전달하는 설교자는 지속적인 경건의 삶과 그에대한 실천 즉 언행일치의 모범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직업이라는 것이고 항상 하나님을 동무삼아 영적 갈급을 해소하고 그 분을 경외하는 겸손함이 특별히 요구된다. 이것이 설교자(목회자)의 삶이고 존재 이유이다.  

 

하지만 그래야 마땅한 설교자들 중에 반-예수적인 목사들이 있다. 패러다임의 변환에 역행하는 종교적 아니 나아가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말이다. "Preaching with Purpose"를 번역한 서울 목동에 있는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정삼지 같은이들 ... 조용기 김홍도 오정현 전병욱 등등 .... 설교 목적이 "돈"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미국에서 수입된 한국개신교의 모습이기도 하다.  

 

설교란, 예배라는 맥락에서 기독교적 전승인 성경을 현대인을 위해 해석해 주는 기독교적인 하나의 연설로 회중의 신앙을 강화 해주고 성도들에게 기독교적인 삶을 안내해주는 목적을 지향한다고  디트리히 뢰슬러는 정의했다. 그러기 위해 설교자의 부단한 교육과 훈련, 하나님으로 부터의 소명과 교제, '하나님의 일'로서의 자각, 설교는 회중과의 대화이며 회중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에 대한 확신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24 그래야 하나님에게 범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으신 차원에 계시는 그분은 피조물인 인간에 대해 샅샅히 알고 계실 터이지만,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것은 옳은 것인가?

 

만져보지도 그리고 보지도 못한 그 존재에 대해 말이다. 그것은 차라리 발 뒤꿈치를 물고 있는 개미가 사람인 나를 안다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분을 안다고 하는 것은 교만이고 욕심이 아닐까 한다. 인간인 우리는 하나님을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제시된 신은 인간의 관념과 사상이 만들어낸 우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위와 불가능성에 승복하여야 하므로 하나님은 오직 경배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칼바르트는 말했다.25  

 

설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재해석이다. 복음에 대한 단순한 선포와 증거여야 한다.  또한 참된 설교란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고 청중인 회중과 소통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앞서 에라스무스는 설교의 목적은 청중의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 했고, 루터는  예배의 중심에 있는 것이 설교이고 그 목적이 바로 회중(민중)을 이해 시키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쯔빙글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성경의 가르침으로 청중(동포)과의 일치됨이 그의 설교자세였다.  또한 청교도 설교론에서,“교회의 타락은 설교의 타락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순전한 말씀 전파와 그에따른 강력한 말씀적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유경재는, “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미래를 제시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사회는 타락하고, 국가권력은 부패하게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바로 정치와 관계있으며 그러므로 흉악한 정치의 결박과 멍에와 압제를 제거하고,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일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다”라고 했고,   안병무는 민본(民本)인 위민사상(爲民思想)을 말하며 어느 누구에게 소유되지도 않은, 스스로 모든 민중에게 민중을 위하여 행동하시는 그 비통한 이들을 위하여 있는 야훼!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다.”라 하였다.  더불어 슐라이마허(Schleimacher)는 그의 실천신학 전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는 설교 본문의 콘텍스트를 가지고 회중을 고려하여 나누는 대화”라고 하면서 설교를 “회중의 표현행위”라고 하였다.26,27

 

현대적 설교의 대표적인 F. 니버갈의 설교관도 설교가 회중에게 영향을 끼치고 도움을 주며 변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하늘에 매달려 있던 전통적인 설교가 땅과 인간’으로 초점이 바뀌고 있다고 하였다.28 에른스트 랑게는 설교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진행과정의 하나로 보았다. 사회교육적 도구로서의 설교의 첫번째 지위와 예배의 중심적 기능으로서의 설교가 여전히 필수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복음 전달 방식이라는 것에 동의하며 성서의 약속이 자신의 신앙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게하고 증언하는 것이 설교다.  그러므로 설교적 상황이란 회중과 전달적 차원에 있는 설교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본래적 과제는 주석이 아니라 이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29  이상과 같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회중에 Fucus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가면서

누가복음 19장에 자께오와 예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그의 집에 유숙하고자 하는 예수의 청함을 받아드리고 저녁을 그의 어머니와 함께 한 후, 포도주를 나누며 담소했던 것으로 전승 되어진다. 그때 과연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예수 스스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만을 섬기라고? … 내가 하나님이니 자신을 섬기라고?  필자는 아닐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당시 처해있는 유대현실과 유대동포에 대해 그리고 삶과 인생에 대해 놔눴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로마와 헤롯왕가, 예루살렘의 종교권력 그리고 그들의 기생충들에 착취 당하고 있던 처자식 먹여살리기도 힘든 고통속에 있던 길릴리 동포들의 삶에 빗대어 대화를 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캐오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누구의 것을 부당하게 취한 일이 있으면 4배나 보상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결단은 철저한 회개였다. 그 회개는 예수가 하나님 이어서가 아니라 예수 사역 전반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곧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가르침을 받았기에 자께오는 그렇게 다짐했으리라 본다. 그것이 바로 이웃을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계명의 실천이 아닌가?30  위와같이 설교 내용도 중요하지만 위의 대화에서와 같이 설교의 대상인 청중(자께오) 즉 회중의 (특정한)상황, 교육의 정도 등등을 고려하여 설교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위에서와 같이 예수님이든 누구든  설교 내용을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나 지금 이 시간 오늘날의 세계관에 따른 그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맞는 설교가 되어야만 한다. 오늘날의 설교 주안점이 설교자에서 회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만일 초대-중세-루터,칼빈 같은 사제들의 시각이 아니라 청중(민중, 회중)의 눈높이에 맞추었더라면 교회사(역사)가 바뀌었을 것은 상상할 수 있다.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등 여러 분야에서도 마찬가질것이다.  더구나 교육 수준이 높아진 오늘날 설교자는 소위 성직자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암브로시오와 같은 지적 수준을 가진 소위 평신도들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생각해보자, 갈릴레아의 예수가 체제와 법과 문화성향이 바뀐 오늘날 우리 옆에 오셔서 설교를 하신다면 그때와 동일한 내용으로 말씀을 하시겠는가? 물론 그분이 오실 때부터 예루살렘 마지막 7일 전까지, 그리고 부활후 40일간 이 땅에 계실때도 제자들에게 설교하신 주제였고 지금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맥락에 대해, 그러나 시대적 상황이 변천하고 바뀌었기에 성서해석에 있어 성서의 세계,  목회현장,  설교자 자신의 사고의 세계,  특히 “성서접맥성”과 “회중접맥성”을 고려한 역사적(회중)-문화적 수준에 맞는 언어구사와 설교를 전하게 되는 설교자도 그렇지만, 보다 더 불완전함에 있고 더 전문화 된 회중들이 그들의 전문성으로 설교를 이해하게 되는 청중들의 필요성과 적합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설교(학)는 무용지물이며 결국에는 지성과 특히 인성이 부족한 계층만을 위한 게토지역을 형성하게 되고 말것이라고 본다.31   

 

 

 

 

참고서적 

 

☞정인교 강의안

☞정인교, 설교학 총론 (대한기독교서회,2010,서울)p19

☞시오노나나미, 로마인이야기 14 “그리스도의 승리, 김석희(한길사,2006,경기도)p19

☞곽선희, “성장의 달”,<기독교사상>(서울:1979년7월호 p108 ☞John Stott, “Between the Two World”,정성구(풍만사,1985,서울)

☞Desiderius Erasmus, Controversies,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05). p. 251 note 867

☞정미현, “에라스무스의 여성관”,(논문, 연세대)201

☞R.H. 베인튼 (공동체안에서) “에라스무스: 그의 학문과 경건의 조합”,99

☞김상윤, 에라스무스와 세르반테스의 이상 추구 방향성에 대하여, 중남미연구 제22권 제1호, 2003.2, 133-145 (13 pages)

☞Martin Luther, A sermon on the estate of marriage, 1519년에 발표하고 1525년에 수정, 이정숙 강의안,“결혼 신분에 관한 설교”  

☞브랜든 힐거만(Brandon Hilgemann),"How to Preach Well According to Martin Luther" https://churchleaders.com/pastors/pastor-articles/306750-preach-well-according-martin-luther-brandon-hilgemann.html 

☞울리히 쯔빙글리 (Ulrich Zwingli), 견고함과 인내에 관하여 (Concerning Steadfastness and Perseverance in Goodness), 마태복음 10장 22절, 총신대학교 류응렬 분석,

Clyde E. Fant, Jr. and ☞William M. Pinson, Jr. (ed.), A Treasury of Great Preaching: Luther to Massillon  (Dallas: Word Publishing, 1995), 92-96에서 부분 발췌

☞주도홍 (백석대학교/역사신학), 청교도 설교론 「성경과 신학」 67 (2013): 235-59.  교도의 설교 이해: 퍼킨스와 에임스를 중심으로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 <신학의 정수>(Medulla ss. theologiae, 1623년) (크리스찬다이제스트,1992)

☞소강석, 뉴스파워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34995

☞Bernhard Haring, Zeitgemäße Predigt 괴팅겐, 1902, 42.

☞유경재, “사건 그리고 말씀” (뉴스앤조이)p136,14,13,62

☞설교자 안병무의 교회론, 작은 교회, 분가선교, 평신도교회 개념을 중심으로 안병무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안병무, "수난사에서 본 마가신학" 신학사상3집1973    +  민중신학이야기 이야기 ; 진보평론 64호  28쪽. Martin Schian, 설교의 과제(Die Aufgabe der Predigt)